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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현대 과학의 수수께끼, 대나무 꽃

[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현대 과학의 수수께끼, 대나무 꽃 기사의 사진

대나무는 휘지 않고 곧게 자라는 생김새만큼 자라는 성질도 까탈스럽다. 꽃을 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옮겨심기도 잘 안 되는 식물이다. 그러나 대나무를 옮겨심기에 좋은 특별한 날이 있다. 오는 24일인 음력 5월 13일이 그날이다. 이날은 대나무가 정신을 잃을 만큼 취하는 날이라 해서 고려 때부터 ‘죽취일(竹醉日)’로 정해 대나무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대나무는 이날 옮겨 심어야 뿌리를 잘 내린다고 한다.

대나무는 현대 과학으로도 풀지 못하는 많은 비밀을 간직한 식물이다. 가장 신비로운 것은 꽃이다. 수십 년 동안 피어나지 않던 꽃을 어느 한 그루의 대나무가 피우기 시작하면 주변의 대나무가 일제히 함께 피운다. 얄궂은 것은 꽃이 지고 나면 이 모든 대나무가 남김없이 말라죽는다는 사실이다. 그가 살아온 세월과 관계없다. 제 명을 다할 만큼 크게 자란 나무나, 그해 새로 돋아난 나무이거나 예외가 없다.

잎이 나야 할 자리에서 잎 대신에 꽃이 피어난다는 특징이 이처럼 참혹한 결과를 빚는 까닭이다. 식물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자손 번식에 많은 에너지를 쓰는 건 동물이나 식물이나 마찬가지다. 식물도 꽃 피우는 데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광합성으로 양분을 공급하는 잎 없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대나무는 몸속에 저장해두었던 양분만으로 꽃을 피워야 한다. 꽃 지고 난 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겨우 꽃을 피우는 데까지는 성공하지만, 그 뒤에 살아갈 힘까지 고갈된다. 그야말로 진을 다해 시들어 죽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의 개화는 많은 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겨 왔다. 대나무 농사를 짓는 농가라면, 더더욱 불길한 일이다.

놀라운 것은 대나무 꽃이 피어나는 주기가 60년 혹은 120년을 주기로 정확하게 되풀이된다는 사실이다. 자라는 환경 조건이 현저히 다른 곳도 개화 주기는 똑같다. 현대 과학은 대나무가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긴 시간을 계산하는지 풀어내려 애썼지만, 여전히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나무 한 그루의 수명은 대략 20년쯤이니, 단 한 번도 꽃을 피우지 못하고 명을 다해 죽는 대나무도 많다는 이야기다. 100년을 채 살기 어려운 사람으로서도 대나무 꽃을 보지 못하는 일은 허다할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동안 대나무 꽃을 보는 것은 행운에 속할 게다. 과학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신비는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감돌고 있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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