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축소형 구조조정 방식 버릴 때다 기사의 사진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내수 부문을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시장 규모가 작은 현실에서 수출입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불가피했다.

문제는 이러한 특성이 국내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제약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선 경제의 불안정성을 높여준다.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 변화에 대한 충격을 주변 국가들에 비해 가장 크게 받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기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경쟁력을 지닌 수출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내수 중소기업의 성과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요즈음에는 정보통신 등 국내 주력산업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 수출의 고용 창출력이 약화되고 수출과 내수 부문 간 상호 연계성도 낮아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안정성을 높이고 지속적인 성장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수출 진흥과 함께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내수 부문의 육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선진국들의 경제 발전 경험을 보아도 소비와 투자 등 내수 비중이 높아져야 성장 잠재력이 확충됨을 알 수 있다.

내수부문 육성 시급해

내수 부문을 육성하기 위한 첩경은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다. 투자가 늘어야 기존 산업이 발전하고 신규 산업이 육성되어 고용이 증가하고 소비 여력이 커지며 이에 따라 투자 수요가 또 다시 창출되는 ‘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가 성립되는 까닭이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당진의 제철 공장 투자다. 이는 막대한 고용 창출과 생산 유발 그리고 수입 대체 효과를 발생시켜 당진 주변 지역 경제의 면모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수 육성을 위해 시급한 의료, 교육, 물류 등 서비스업 발전도 기업들의 거대 투자를 필요로 한다.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늘지 않는 것은 국내 경제가 외환위기 때 형성된 ‘안정적 축소지향형 투자 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주범으로 매도된 것이 기업들의 방만한 투자였다. 그 결과 국내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강요받았다. 이른바 5+3 원칙을 토대로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대폭 낮추고, 비주력 계열사를 매각하며,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다시 시행하였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을 내세워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구축한 시기도 이 때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업 규제 정책은 국내 기업들의 체질을 강화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이때부터 기업들의 동물적 투자 본능이 사라져 버린 게 심각한 문제다. 주어진 제도적 틀 안에서 현금 흐름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안정적이고 순치된 경영 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재무구조 건전성이나 현금 흐름을 중시하는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 방식은 더욱더 국내 기업들의 역동성을 거세하는 것이 되었다. 기술개발이나 사업 재편 등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진정한 의미의 구조조정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는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

동물적 투자본능 키워야

국내 반도체 부문이 세계적인 산업으로 성장한 비결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부도설이 나돌 정도로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도 막대한 금액을 투자한 기업의 모험정신과 위기를 돌파하는 추진력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한국 경제가 소득 3만 달러 경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전과 같은 기업들의 야성적인 투자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각 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재무 기준을 갖고 기업들을 주어진 틀 속에 가두려 한다면 기업 투자가 살아나는 것은 백년하청이 될 수 있다. 내수 육성을 위한 기업 투자를 진정 원한다면 외환위기 당시의 축소형 기업 규율 체제를 확대형으로 바꾸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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