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영웅 부부젤라의 탄생 기사의 사진

‘현대 영웅’의 탄생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동의어가 된 ‘부부젤라’ 얘기다. 부부젤라는 이번 스포츠 제전의 뜨거운 화제다. 길이 1m 남짓의 플라스틱 나팔. 그 원색의 값싼 악기가 집단적으로 뿜어내는 소리는 폭발적이다. 축구 경기장은 하나의 거대한 벌통이었다. 관전 때마다 TV수상기 주변엔 벌떼의 윙윙거리는 소음이 따라다녔다.

사정은 경기가 벌어지는 현장이 더 심했을 것이다. 비행기 이착륙시의 굉음 같은 120∼140㏈ 정도의 엄청난 소음이라고 한다. 당장 선수들은 플레이에 집중하기 힘들다며, 거액을 쏟아 부은 방송사들은 중계 전달이 제대로 안 된다며 불평했다. ‘지옥에서 온 소음’이라는 저주 섞인 비난까지 나왔다. ‘독감 전염병을 전파시킬 수 있다’라고 아프리카 멸시가 다분히 깔린 문제 제기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부젤라는 승승장구했다. 각국 응원단의 응원가를 삼켰고, 브라질 삼바 드럼도 기를 못 폈다.

도대체 어떤 악기이길래? 우리나라 꽹과리쯤의 역사성을 갖는 악기인 줄 알고 위키피디아를 검색했더니 지금 형태의 부부젤라의 역사는 의외로 일천했다. 원주민 부족회의 때 불었다는 ‘쿠두젤라(아프리카산 영양 쿠두의 뿔로 만든 뿔피리)’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모양은 1960년대에 출발했다는 게 통설이다.

남아공 축구구단인 카이저 치프스의 ‘광팬’인 프레디 사담 마크가 1965년 자전거 경적에서 검은 고무막을 뗀 후 불기 시작한 게 탄생의 계기였다는 것. 그는 부는 데 따른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파이프를 덧댐으로써 지금의 긴 나팔 모양이 됐다. 1970년대부터 슬슬 축구 경기장 등에 모습을 드러내며 퍼져나갔다.

그런 부부젤라에게 첫 시련이 왔다. 당시 알루미늄 재질이었던 이 응원도구가 흉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경기장 반입이 금지된 것. 마크는 플라스틱 버전에 착안했고, 이를 제작할 회사를 수소문해 2001년부터 남아공의 현지기업이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부부젤라에게 가장 큰 위기는 지난해였다. FIFA의 남아공 컨페더레이션컵에서 이미 아프리카적인 응원 문화로 자리잡은 부부젤라가 출현하자, 선수들과 방송사들은 기절할 듯 불평을 쏟아내며 사용 금지를 주장한 것이다. FIFA 회장 제프 블래터는 부부젤라의 손을 들어줬다. 남아공축구협회가 부부젤라야말로 가장 남아공스런 축구관람문화라고 항변한 것이 먹혔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이 개막된 이후 부부젤라는 새삼 글로벌 논쟁이 됐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온간 저주와 시비를 물리치고 남아공 월드컵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거대 자본도 이런 인기에 편승했다. 현대자동차는 남아공 케이프타운 시내에 길이 35m짜리 자이언트 부부젤라를 제작·전시해 명물로 만들었다. 가장 큰 부부젤라로 기네스북에 오를 전망이다. 부부젤라 응원 문화가 남아공을 넘어 세계로 상륙하기 시작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우리나라에도 길거리 응원에 부부젤라가 등장했다.

따지고 보면, 부부젤라는 영웅 탄생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갖췄다. 미천한 출생 배경과 조력자와의 만남, 자본의 가세, 반복되는 고난에 굴하지 않는 생존력…. 위기를 극복한 승리의 가장 큰 힘은 부부젤라가 지닌 ‘탁월한 자질’일 것이다. 코끼리가 울부짖는 듯한 굉음에 날려 보내는 삶의 스트레스, 상대방에 야유를 실어 불 때의 쾌감, 다른 응원자들과의 교감, 거기다 민족적 동질감까지…. 대중은 영웅 부부젤라의 출현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낯선 것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 못하고, 저급한 문화인 양 치부했던 문화적 편견과 시비는 부부젤라의 영웅적 위력 앞에선 부잣집 아들의 불평처럼 허약했다. 아프리카판 영웅 부부젤라가 다음 월드컵에서 세계인의 문화로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다. 이는 남아공에 왔던 세계 각국 응원단들이 현장에서 느꼈을 공감의 강도와 크기에 달려 있을 것이다. 부부젤라 특성의 몫이기도 하다.

손영옥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