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김성기칼럼

[김성기 칼럼] 스포츠라이터와 애국심판

[김성기 칼럼] 스포츠라이터와 애국심판 기사의 사진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 진실만으로 감동을 엮어내는 역할을”

영어권에서 신문기자를 보통 뉴스맨(newsman) 프레스먼(pressman) 또는 리포터(reporter)라고 부르지만 스포츠 담당 기자는 스포츠라이터(sportswriter)라 한다. 라이터는 우리말로 기자보다는 작가를 연상시키는 단어다. 단순한 승부를 떠나 드라마 같은 감동과 흥분을 안겨주는 스포츠 뉴스의 특성을 반영한 호칭이라고 이해된다. 가급적 감정을 배제하고 팩트(fact) 중심으로 엄밀하게 취재하는 정치 사회 분야 등의 기자와는 달리 작가의 역량까지 살려 팩트 속의 스토리를 발굴하라는 의미가 스포츠라이터에 담겨 있다.

하지만 감동과 스토리를 중시하는 스포츠 뉴스의 특성이 때로는 과장과 왜곡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스포츠가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와 결합해 정치적으로 변질된 사례는 논외로 치더라도 감동과 기대감에 도취한 스포츠저널리즘도 국민과 스포츠팬들에게 허상을 심어주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스포츠는 경기력뿐 아니라 선수들의 사기와 당일 컨디션, 그리고 운과 날씨, 경기장 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수가 작용해 결과를 좌우한다. 축구 농구 배구 등 단체 구기종목은 여기에다 선수 개개인의 컨디션과 포지션, 경기 흐름이 더욱 복잡한 조합을 구성해 변수를 증폭시킨다. ‘공은 둥글다’라는 말은 구기종목의 변화무쌍한 흐름을 강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월드컵축구대회에서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위인 스페인이 H조 1차전에서 24위인 스위스에 0대 1로 패했고 D조 1차전에서 호주를 4대 0으로 대파한 독일이 2차전에서 세르비아에 무릎 꿇는 이변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변과 우연을 강조하다 보면 자칫 선수 기량과 팀워크 등 필수적인 경기력을 가볍게 여기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축구도 기량보다는 운이 좌우하도록 고안된 화투놀이처럼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운도 일정 수준의 기량을 확보해야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것도 자주가 아니라 가끔.

언론의 긍정적인 평가와 성원이 선수들의 사기와 투지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애써 취약점은 외면한 채 상업적 목적이나 기타 이유로 자국 선수들을 치켜세우는 애국 보도는 좋은 성적 대신 폐해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언론의 집중 보도로 인기가 치솟고 온갖 찬사가 쏟아지지만 팀 분위기는 자만에 빠져 실력 향상보다 요행을 바라는 방향으로 퇴보하기 쉽다. 막상 실전에 투입되면 선수들은 헛발질하기 일쑤고 중요한 고비에서 실수한 선수는 팬들의 질책을 받는 희생양으로 지목돼 한동안 헤어나기 어려운 상처를 입는다.

1972년 6월 브라질 출신의 축구황제 펠레가 소속팀 산토스와 함께 방한해 서울운동장에서 우리나라 대표팀과 경기를 가졌다. 축구 팬들은 펠레를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장을 찾거나 TV 중계에 빠져 들었다. 우리 대표팀은 펠레부터 집중 수비했고 심판은 펠레를 겨냥한 한국 선수들의 반칙을 애써 눈감아 주었다. 축구황제의 화려한 개인기를 보고자 했던 축구팬들은 위험한 태클과 편파적인 심판 판정에 항의를 퍼부었다. 아시아의 맹주라는 자만에 빠져 있던 대표팀은 후반 펠레의 개인기에 말려 2대3으로 패했다. 주심은 ‘애국 심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월드컵 대회에 출전한 한국을 응원하는 열기가 오늘 새벽까지 뜨겁게 이어졌다. 월드컵 본선 7회 연속 출전 위업을 이룩한 대표팀은 조별 리그에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국민은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선수들이 전혀 기죽지 않고 세계정상급 선수들과 당당하게 겨루는 장면에 자부심을 느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애국심판과는 달리 보기 싫은 장면까지 현실을 직시해 진실만으로 감동을 엮어내는 게 스포츠라이터의 역할이어야 한다. 자만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는 선수가 있고 진실을 바탕으로 벅찬 소식을 전하는 스포츠라이터가 있을 때 국민이 느끼는 감동은 배가되리라고 믿는다.

김성기편집인kimsongk@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