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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열대우림의 상징 아메리카테이퍼

[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열대우림의 상징 아메리카테이퍼 기사의 사진

아메리카테이퍼는 내가 동물원에 와서 처음으로 사귄 동물친구다. 몸무게가 250㎏을 훌쩍 넘기고, 간혹 나에게 냄새나는 오줌을 뿌리기도 하지만 등을 살살 긁어주면 아예 드러누워 다리까지 들어 올리며 배도 긁어달라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순한 녀석이다.

동물원 식구라면 독특한 것 한 가지 정도는 갖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테이퍼는 유난히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 뭉툭한 몸매는 언뜻 돼지 같고, 윗입술과 합쳐져 앞으로 튀어나온 코는 코끼리를 닮았다.

그러나 이같은 모습은 테이퍼가 지구에 나타났던 수백만 년 전 모습 거의 그대로다. 지금보다는 100만 년 전쯤이라면 훨씬 더 잘 어울렸을 것 같은 독특한 생김새 덕에 18세기 동물학자 린네는 테이퍼가 땅에 사는 하마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지금도 테이퍼 전시장 앞에 선 사람들은 돼지를 닮았느니, 코끼리를 닮았느니 하지만, 사실 테이퍼는 홀수의 발굽을 갖고 있는 기제류로 말이나 코뿔소에 가까운 동물이다.

테이퍼는 몸집은 크지만 겁이 많다. 그래서 밤에 먹이를 찾아 나서는 야행성이고, 숲에서 퓨마나 재규어를 만나면 물속으로 재빨리 도망을 친다. 수영실력도 수준급인데다가 물속에 있는 물풀을 뜯어먹을 때는 잠수도 곧잘 한다. 그래서 사나운 맹수를 피할 때나 더운 날 체온을 식힐 때, 그리고 몸에 붙은 기생충을 떨어낼 때 목욕을 한다.

물속에서는 먹기도 하고 배설도 한다. 수영을 하면 장운동이 활발해져 변비 걱정 없고, 물의 부력으로 인해 거대한 체중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니 짝짓기의 성공률도 높아지게 된다.

그래서 테이퍼가 사는 곳에는 항상 등이 잠길 만한 깊이의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고, 육지에는 먹이를 먹기 위해 수풀을 헤치며 다닌 길이 나 있다. 테이퍼가 만들어낸 길은 다른 동물들이 물가에 다다르는 데 도움을 주고, 테이퍼의 똥에 있는 소화되지 않은 씨앗은 새로운 싹을 밀림 이곳저곳에 퍼뜨리는 데 도움을 준다. 그래서 판다라고 하면 중국이 생각나고, 호주하면 코알라를 떠올리는 것처럼 테이퍼는 남미의 열대우림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야자열매를 놓고 벌이는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항상 지는 것은 테이퍼였고, 항상 다니는 길로만 다니고 뚜렷한 흔적을 남겨놓는 습성 때문에 손쉬운 밀렵의 대상이 되어 왔다. 따라서 현재는 여러 나라에서 보호프로그램을 함께 진행 중인데, 오랜 세월 지구에서 생존해 왔던 동물이 다음 세대에도 살아 있게 하려면 사람들의 더 많은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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