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의 눈물 … 조선학교를 보라” 기사의 사진

김명준 다큐 감독이 말하는 … 재일동포에게 눈물이란

정대세가 울었다. 지난 1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북한-브라질 경기 전 양국 국가(國歌)가 연주될 때다. 그 눈물은 어찌나 난해했던지 해석이 분분했다.

차범근 SBS 해설위원은 “얼마나 월드컵 무대를 밟고 싶었으면”이라고 했고, 정대세 본인은 “큰 경기에 나선 게 기뻐서”라고 말했다. “재일동포의 고단한 삶이 묻어난 눈물”이라고 풀이한 이도 있다. 그의 눈물이 궁금했다.

조선학교

김명준(40·사진)씨를 만난 건 22일이었다. 그는 다큐멘터리 ‘우리학교’의 감독이다. 2003년 10월부터 2005년 4월까지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조선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숙식하며 촬영한 이 영화로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 운파상(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재일동포가 아니면서 재일동포 영화를 가장 잘 만든 사람이다.

-정대세는 왜 울었을까요?

김 감독의 대답은 1시간30분 동안 이어졌다. 되풀어보면, 출발점은 조선학교다. 일본에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자본으로 설립된 초·중·고교 통합 과정의 학교가 70여개, 대학교가 1개 있다. 이런 학교를 조선학교라 부른다.

정대세는 초·중·고·대학교 모두 조선학교를 다녔다. 재일동포 중에도 드문 경우다. 형과 누나도 그랬으니 집안 전체가 조선학교 출신인 셈이다. 학비도 비싼 곳에 부모는 악착같이 삼남매를 보냈다.

-정대세 부모님이 조총련계인 모양이네요. 그래서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 선수가 된 거겠죠?

“글쎄요. 조선학교가 조총련계 지원을 많이 받았고, 북한 쪽에 가까운 교육을 하는 건 맞아요. 이 문제로 조선학교들도 요즘 고민이 많아요. 그러나 북한을 지지하는 동포만 조선학교에 다닌다는 건 100% 오해예요. 재일동포들에게 조선학교는 그냥 ‘우리 학교’예요. 우리말과 민족정신을 가르쳐주는 유일한 학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정대세의 형 이세(28)씨는 이와 관련해 “아버지는 한국 국적이고 어머니는 조선적(朝鮮籍)이다. 아버지는 (남과 북 중에) 지지하는 쪽이 없고 어머니는 따지자면 조총련 쪽”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도 있는데 굳이 조선학교에 보낸 건 부모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것 아닐까요?

“민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는 일본 전역에 4개뿐이에요.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어요. 아까 말한 것처럼, 아이에게 한국말을 가르치고 싶다면 선택 가능한 학교는 조선학교뿐이에요.”

민단의 한국학교는 교포들 마음에서도 멀다고 했다. “도쿄 한국학교는 한국에서 온 주재원 자녀가 다니는 학교로 변했어요. 일본사회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은 제공하지 않고 한국대학 입시교육을 해요. 동포들이 아이 보내기 힘들죠.”

민단이 운영하는 오사카(大阪)의 백두학원이나 금강학원은 일본어 수업시간이 한국어 시간보다 많다. 일본 교과과정에 부합하는 교육을 해서 일본 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냥 가까워서 조선학교에 가는 거라면 정대세를 이해하느라 굳이 조선학교를 들여다볼 필요가 없을 텐데.

“흠… 조선학교를 다니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조선학교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복잡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1945년 광복 직후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이 민족교육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탄압을 받았지만 학교 형태로 발전시켜나갔다. 이 학교를 지켜내기 위해 재일동포 1세대가 쏟아 부은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도 도움을 주긴 했지만 재일동포들이 스스로 돈을 모아 일군 학교였다. 그 전통을 이어받은 게 조선학교라는 것이다.

“자연히 학생들이 사명감을 갖게 되죠. 일본 애들에게 꿀리지 말아야겠다는 그런 거. 주변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어요.”

그의 영화에서 일본 아이들과의 축구시합에서 지고 그토록 서럽게 우는 재일동포 아이들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일본 학생들은 자기계발을 위해 축구를 하지만 조선학교 아이들은 단지 거기에만 머무를 수가 없어요. 일본 애들을 한번 이기면 동포 사회가 난리가 나요. ‘일본 학생들을 상대로 열악한 상황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잘하는구나’ 하는 거죠. 그래서 마음가짐이 비장해요. 정말 꼭 이겨야겠다는 마음이 강하죠.”

정대세의 눈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재일동포를 만나보면 일본학교 다닌 분, 한국학교 다닌 분, 조선학교 다닌 분이 정말 달라요. 사고방식 차이가 엄청나죠. 조선학교를 조금이라도 다닌 분들은 당당해요. ‘일본 사회 나가서 잘 행동해야 돼. 자긍심을 가져야 해.’ 이런 의식이 강하죠.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죠. 딱 정대세예요.”

조선학교도 최근엔 많이 달라졌다. 80년대 이후 남한에서 이민 온 사람들도 아이를 맡기는 경우가 꽤 있다.

“이민자들은 처음엔 조선학교라고 하니 무서워하죠. 하지만 동포 사회에서 살다보면 조선학교에 자주 가게 돼요. 학예회도 있고, 운동회도 있고 하니까. 가보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평범한 학교죠. ‘여기에 아이를 보내면 우리말도 배우고 일본말도 배우겠구나’ 싶어서 보내는 거예요. 일본으로 귀화했는데도 조선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집도 있고 한국 국적을 가진 아이들도 많아요.”

조선적

그래도 질문이 남는다. 정대세는 한국 국적인데 북한의 축구 국가대표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재일동포들의 복잡한 국적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정대세는 재일동포 3세다. 일제시대 일본으로 건너온 할아버지 고향은 경북 의성이고, 아버지는 한국 국적, 어머니는 조선적이다. 정대세는 아버지를 따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일제시대 조선인의 국적은 모두 일본이었다. 광복과 함께 모두 조선적이 부여됐다. 북한도 남한도 생기지 않았던 시기였고, ‘조선’이란 용어에는 ‘조선반도 출신자’라는 뜻밖에 없었다.

48년 남북에 두 개의 나라가 생겼다. 65년 한일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은 정식 국적으로 인정됐다. 일본은 지금까지도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에서 북한 국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일동포 중 한국 국적을 택하지 않은 사람은 조선적으로 남게 됐다.

현재 조선적은 여전히 조선반도 출신자란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다. ‘조선’은 국적이 아니라 기호에 불과하다. 조선적 재일동포는 법적으론 무국적자다.

일본 정부가 한국 국적만 인정하기 때문에 재일동포가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을 변경하는 건 언제든지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조선으로 변경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조선적은 줄어들기만 할 뿐 결코 늘어나지는 않는다. 북한 대표로 뛰고 싶었던 정대세가 국적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다.

“북한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면 일본에서 살 수가 없게 되죠. 한번 출국하면 재입국이 거부될 테니.” 정대세는 2년 전 국내 일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의 절망감을 털어놨다.

“조선적으로 바꾸는 게 일본 법률상 불가능했다. 절망감에 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고, 내 꿈을 자신의 꿈처럼 열망했던 어머니도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내 꿈 때문에 가족까지 깨질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이 정대세에게 여권을 발급해줬고 국제축구연맹(FIFA)도 남북한 특수성을 고려해 정대세가 북한 대표로 뛰는 걸 인정했다.

“일본에서 한국 국적은 플러스알파가 되는 측면이 있어요. 회사에서도 좋아해요. 하지만 조선적은 달라요.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여전하죠.”

그런 시류를 거슬러 조선적 회복을 시도했던 정대세가 생각하는 조국은 어디일까. 김 감독은 이렇게 설명했다.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조국은 복합적이에요. 학교 교육이 북한을 지향하고 있다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알게 돼요. 근데 집에 가면 엄마는 한류 드라마를 보고 열광해요. 자기도 한국음악을 즐겨 듣게 되죠. 문화적으론 한국과 가깝고 머리로는 북한이 조국 같은 그런 상황인거죠.”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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