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의구] 문민통제와 軍 기사의 사진

미국은 독립 당시부터 문민통제(civilian control)를 확고한 원칙으로 정립했다. 강력한 물리력을 가진 상비군이 안보를 위해 필요하지만 독재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독립전쟁을 이끌던 총사령관이었던 조지 워싱턴 장군은 언제나 의회의 권위를 존중했다. 다른 건국국부들도 군을 국민이 선출한 대표의 통제 아래 두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치학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문민통제는 영국에서 비롯됐다. 영국은 당초 군 통수권이 왕에 속해 있었다. 1640년대 청교도 혁명 당시 시민계급은 왕을 처형하고 군권을 장악했지만 이는 올리버 크롬웰의 독재로 연결됐다. 왕정복고를 거쳐 명예혁명 후 왕과 의회는 군정권과 군령권을 나눠가졌다. 미국의 경우 여기에 자신들의 역사경험을 보태 대통령은 군 지휘권 및 전쟁수행권을, 의회는 전쟁선포권과 군 예산권 및 핵심간부 청문 권한 등을 분담토록 했다. 미 헌법 1조는 의회에 전쟁 선포권을 부여하고 있고, 2조에는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임이 명문화돼 있다. 가장 파괴적인 핵무기 사용권은 국방부가 아니라 에너지부 관할로 정리돼 군의 손길로부터 멀리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에 대한 민의 통제는 기본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고 했던 마오쩌둥조차 “당이 총을 지배하고, 결코 총이 당을 지배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정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23일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을 경질했다. 문민통제의 원칙을 훼손했고 아프간전 수행에 필요한 신뢰를 무너뜨렸다는 이유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팀 안에서의 논쟁은 환영하지만, 분열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배경을 밝혔다. 최고의 민주주의를 구가하고 있다는 미국에서 대통령과 군 핵심엘리트 사이 반목이 표출된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실상 미국에서는 여러 차례 군권을 둘러싼 대통령, 의회와 군부 사이 충돌이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 군의 구체적 작전에 관한 권한을 강화하려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이에 반발하는 북군 사령관 조지 매클레런 장군을 해임했다. 6·25전쟁 때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군의 최고 영웅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를 해임했다. 만주에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공공연히 주장한 맥아더는 한반도 내 재래식 전쟁으로 제한하기를 원하던 행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1990년대에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동성애자를 군에 복무시키는 문제 등으로 군, 의회와 갈등을 빚었다.

승자는 언제나 문민통제의 원칙이었지만 이런 사례들은 군과 정치 사이의 갈등이 원초적이라 할 만큼 역사적, 사회적으로 뿌리 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민주당 출신인 클린턴 대통령이 공화당 소속 윌리엄 코언을 국방장관으로 뒀고 오바마 대통령 역시 전임 정권에서 임명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것은 그만큼 군과의 관계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랫동안 군 엘리트의 권력장악이 계속됐던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가 쿠데타 우려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93년 군 엘리트들의 사조직인 ‘하나회’ 해체 이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이후에도 군 예산 감축, 햇볕정책, 전시 작전권 전환 등을 놓고 군의 반발이 표출됐고 이는 진보적 성격의 정부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최근 천안함 사건 감사원 감사 결과를 놓고도 군 수뇌부의 반발이 불거졌다. 엄격한 군 조직이라지만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문제제기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지휘계통 내에서의 논란이어야 하고 절제된 형식이라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의 일환으로 문제가 분출돼서는 안 된다. 대안이나 해법도 국가방위와 국민보호라는 가치에 봉사한다는 준거 아래에서 도출돼야 할 것이다.

김의구 사회2부장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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