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26) 나를 물로 보지 마라 기사의 사진

동자를 거느린 두 선비가 너럭바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본다. 가운데 바위 사이로 두 갈래 물길이 터졌는데, 물살은 물거품이 일 만큼 세차다. 때는 여름이다. 승경(勝景)은 아니지만 볼수록 눈이 시원해지는 그림이다. 그린 이는 이한철. 추사 김정희와 대원군 이하응의 초상을 그리고 고종의 어진 제작에 참여한 화원이다.

옛 선비들의 피서는 점잖다. 웃통 벗어 젖힌 채 맨살로 물에 뛰어들면 채신머리없다. 그저 발만 물에 담그는 탁족을 즐겼다. 그보다 담담한 쪽은 물 바라보기다. 물 보기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관수세심(觀水洗心)’이라, 흐르는 물을 보며 마음을 씻는다고 했다. 옛날 성철현달(聖哲賢達)과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은 물에 자신을 비춰 봤다. 인류 최초의 거울이 물 아닌가.

공자는 물을 보고 깨달았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 노자는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으니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는다.” 주자는 읊었다. “땅의 모양은 동쪽 서쪽이 있지만, 흐르는 물은 이쪽저쪽이 없도다.” 송강 정철도 보탠다. “물은 나뉘어 흘러도 뿌리는 하나다.” 더위를 쫓을 뿐만 아니라 깨달음을 좇는 게 물이다.

이 그림은 물소리 콸콸 넘친다. 물소리는 어떠한가. 처마 끝의 빗소리는 번뇌를 끊어주고, 산자락의 물굽이는 속기를 씻어준다. 세상 시비에 귀 닫게 해주는 것도 물소리다. 오죽하면 최치원이 ‘옳다 그르다 따지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짐짓 흐르는 물로 온 산을 가두어 버렸네’라고 읊었을까. 물을 물로 보면 안 된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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