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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선의 동물이야기] 느림의 전략가 슬로우로리스

[배진선의 동물이야기] 느림의 전략가 슬로우로리스 기사의 사진

더위를 피해 산으로 바다로 탈출을 꿈꾸는 무더운 7월이 시작됐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여름보다 더 뜨겁고, 더 후텁지근한 열대 정글에서 두툼한 털 코트까지 챙겨 입고 사는 녀석이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으로 이어지는 동남아시아의 열대우림에 사는 원시원숭이 ‘슬로우로리스’가 그 주인공이다.

작은 곰인형처럼 온몸이 빽빽한 털로 덮여있으면서도 잠을 잘 때는 행여 추울까봐 털옷도 모자라 팔과 다리를 모으고 몸을 둥글게 말아서 가능한 한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게 한다. 몸에서 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다른 고등 포유류들에 비해 50%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슬로우로리스는 한여름 더위 속에서도 털옷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그뿐이 아니다. 또 다른 로리스만의 단열전략이 팔과 다리에 있는 혈관에 있다. 로리스는 팔 다리에 흐르는 동맥과 정맥을 모여서 나란히 지나가게 해주어 심장에서 나온 따뜻한 동맥피가 말단에서 돌아오는 차가운 정맥피를 데워주고, 반대로 동맥피는 손발로 가기 전에 미리 식혀져 열이 몸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해준다. 산업용 열교환기의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슬로우로리스는 몸집도 작고, 먹이를 이용하는 능력도 떨어지지만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전략을 통해 자신보다 몸집도 크고, 훨씬 진화된 진짜 원숭이들과 경쟁해서 당당히 살아 남았다.

생존비결의 첫 번째는 재빨리 도망치지 못할 바에는 슬로우로리스라는 이름처럼 천천히 움직이거나 아예 안 움직이는 전략이다. 움직임이 줄어드니 에너지를 덜 쓰게 되고, 몇 시간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빽빽한 나뭇가지에 파묻혀 있으면 매서운 포식자의 눈도 쉽게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비결은 경쟁이 심한 낮 대신 밤을 선택한 점이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도 어둠 속에서 잘 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슬로우로리스가 경쟁해야 할 상대는 원숭이만이 아니다. 로리스의 생존에 가장 큰 위협은 사람이다. 슬로우로리스는 해마다 많은 수가 밀렵되어서 밀거래시장을 통해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몰래 들여오려다 공항에서 적발된 경우도 있고, 119가 구조해서 동물원에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밀렵과 밀거래라는 극도의 스트레스 환경에서 야생동물 대부분은 적응하지 못해 죽거나 살아도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된다. 야생동물은 자연에 있을 때 더 동물답고, 그래서 더욱 아름답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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