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준모] 암흑 걷어내는 문화재 복원 기사의 사진

식민지라는 근대사의 그늘과 절대빈곤을 극복하고자 ‘잘 살아보세’를 외치던 현대사 속에서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그 밖의 많은 것을 유보하거나 포기해야만 했다. 산업화 드라이브 정책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많은 문화재들을 삼켜버렸고 그 후 개발과 효율성을 위해 또 다시 사라져야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복원과 보존을 외치는 지금도 한편에선 우리의 잘못으로 사라져가는 문화적 자산이 있다는 것이다. 화재로 무너져 내린 숭례문이 그렇고, 수많은 공사로 인한 지반침하로 불안한 흥인지문이 그렇다. 하지만 더한 경우는 소위 ‘개발독재시대’에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던 권력기관들이 자신들의 편의와 권위를 과시하려 앞 다퉈 철거, 훼손했던 문화재들이다.

지금도 망실되는 문화자산

다시 그것들을 복원하고 보존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도 비용이지만 그 전에 복원 및 보존의 철학, 과학과 기술의 확보, 이해 당사자들 간의 이익충돌 등 고려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런 점에서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권고한 대로 ‘훼손된 능역의 원형 보전’을 위한 첫 사업인 의릉(懿陵·사적 제204호)복원 사업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능의 복원은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다. 1962년 옛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청사가 들어서면서 건물을 세우고 여기에 연못과 운동장까지 만들면서 훼손되었던 능역은 우리의 자화상이나 다름없다. 이를 복원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세밀하게 따져가며 일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의릉 복원은 1931년 발간된 선원보감을 근거로 할 것이라는데 실제 의릉이 조성된 1724년을 기점으로 복원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실록 등 문헌을 들추고 연구하면 해답이 나올 것이다. 또 석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면 정으로 쪼아낸 전통적 방법을 사용할 지, 기계로 깎고 다듬은 돌을 사용할 지도 중요한 선택이다.

따라서 복원 사업은 단순히 전통이나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의미를 넘어 우리 근현대사에 드리운 암흑을 걷어내고 새 시대로 향하려는 동기부여의 기회로 삼는 데서 나아가 문화재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학과 원칙, 지침을 수립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그리고 향후 단순한 동산 문화재의 복원이나 보존에서 건조물이나 건물군, 도시에 이르는 다양하고 폭 넓은 문화적 복원과 보존을 위한 매뉴얼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선 법제화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졸속으로 추진되는 문화재 복원은 보존보다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이다. 최근 구 기무사 부지에서 발견된 종친부 유구에서 30년 전 이전한 종친부 건물의 주춧돌과 기타 유구들이 발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는 1981년 이전 당시 주춧돌조차 제대로 발굴하지 않고 팽개쳤다는 증거다. 원칙 없는 보존 또는 이전이 가져온 폐해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보존 위한 철학 정립할 때

그런 점에서 프랑스 대혁명 초기 설치된 문화재보존위원회가 “건축을 포함한 예술작품이 시민을 선도하는 건설적이고 공적인 가치를 지닐 때, 또는 전제군주제에서 벗어나 그런 가치를 가질 때, 그리고 근대시민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즉 사회적 유용성이 있을 때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명시한 원칙을 되새길 만하다. 우리도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원칙을 마련하고 그에 걸맞은 문화재 복원 세부지침을 수립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은 문화재 침탈과 훼손의 미망에 사로잡혀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무조건적인 복원이나 보존만을 외칠 것이 아니다. 암흑의 시대, 문맹의 시대에 권력과 욕심 때문에 철거나 훼손은 후딱 해치웠지만 사라진 문화재를 재생시키는 일은 문화적으로 했으면 한다. 이것이야말로 시대의 장막을 걷어내고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정준모 국민대 초빙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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