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칼럼] 目不忍見 기사의 사진

세종시 건설 계획의 수정이 좌절됐다. 국회가 정부의 안을 부결시켰기 때문이다. 상임위에서 부결된 것을 본회의에까지 올려 의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거부’의사를 재확인했다. 찬성은 105표였던 데 비해 반대는 무려 164표였다. 정부가 ‘압도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입법권은 국회에 있다. 국회가 표결을 거쳐 거부했으므로 정부의 수정계획은 당연히 포기되어야 한다. 그게 대의민주정의 원리이고 원칙이다.

이 상식을 정부는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아무래도 이명박 대통령, 정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의 지도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정말 입법권에 대한 존중심이 있었다면 일을 그런 식으로 끌고 와서 결국 쓰레기 구덩이에 던져 넣어 버리듯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종시 수정, 예정된 좌절

가부 결정권은 국회에 있는데도 정부는 홀로 일을 만들고 벌여 왔다. 의석 168석의 거대집권당을 두고도 형편없는 표차로 지고 만 게 그 때문이다. “그간에 나름대로 논의도 하고 설득도 했지만 ‘친박계’의 태도가 너무 완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고 싶겠지만 그것까지도 청와대와 행정부 측의 책임 몫이라는 것을 부인해서는 안 된다.

정말 세종시 계획 수정이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사명이라고 인식했다면 친박계뿐만이 아니라 야당에 대해서도 성의를 다한 설명과 설득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정부는 애초 이를 포기하고 충청주민과 국민을 설득해서 그 힘으로 친박계와 야당을 압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전형 아닌가. 이런 태도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대의민주정치를 경시한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여의도식 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갖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우리 정당과 의원들의 정치행태를 누군들 마음에 들어 할까. 다만 그것을 핑계 삼아 실체로서의 정치기관, 정치세력, 정치인을 멀리해온 것이라면 정치리더로서의 중대한 흠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그러면서도 ‘역사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며 굳이 ‘본회의 표결’을 주문했다. 애초에 정당들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설득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배경이 혹 이것이었는가? “역사의 심판이 무서운 줄 알면 누가 감히 수정안에 반대하겠어!” 그런 심사로?

필자 역시 ‘세종시 원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의도와 내용 모두에 대해 정말이지 진지하게 반대하는 입장에 서 왔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서 더욱 정부의 처사를 이해하기 어렵다. 원래부터 국회에서 통과시킬 의지는 없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기록에 남겨서 훗날 호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심사로 세종시 수정을 시도했다는 지탄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되지 않았는가. 정부의 수정안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도매금으로 바보 만들고?

한심스러워 못봐주겠다

한나라당의 한심함도 견주어볼 대상이 없을 정도다. 물론 당내에서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제대로 된 민주정당이라면 이견이 있어야 마땅하기도 하다. 그런데 대의민주정치의 의의는 ‘차이에서 시작해 합의에 이르는 평화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화(토론·설득)와 타협의 과정’이라는 데 있는 것 아니던가.

이 과정이 무시되거나 거부되면 대의민주정은 빛을 잃고 만다. 고집과 고집이 요지부동으로 부딪치다가 온갖 악다구니를 거쳐 결국 다수결로 결판나고 마는 정치구조라면 의회가 왜 필요하고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무슨 소용이라는 것인가. 야당과의 관계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 하자. 같은 당에 몸담고 있으면서 끝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해 국회 본회의 표 대결까지 벌이고도 창피한 줄 모르는 여당 의원들, 그리고 그 리더들의 모습은 차라리 희화다. 이런 사람들이 집권당을 형성해서 의정을 이끌고 있으니 정치가 만날 이 모양이지.

이미 스스로 정치력이 고갈되었음을 국민 앞에서 고백한 격이니 이참에 갈라서는 게 그나마 정직한 태도다. 엉거주춤 뒤엉켜 국민 헷갈리게 하지 말고! 적어도 이 필부의 생각으로는 그렇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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