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홍덕률] 고약한 ‘서울중심병’ 기사의 사진

세 달쯤 전이었다. 연예인과 그 자녀가 함께 출연하는 텔레비전의 한 인기 프로그램에서 중견의 인기 연예인이 이런 말을 했다. 아들이 ‘인 서울 대학’(서울에 위치한 대학)에 합격하면 스포츠카를 선물로 사 주겠다고. 모처럼 쉴 생각으로 TV 앞에 앉았던 필자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음도 심히 착잡해 왔다. 저런 발언이 공중파 인기프로그램에서 버젓이 방송되는 것도 언짢았지만, 저런 생각이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현실을 확인한 것 같아서 못내 슬펐다. 필자가 지방대학의 총장 일을 맡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언컨대 나라의 장래가 걱정돼서 그렇다.

지방 사람들은 이류인가?

소위 지방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전국 대학생의 반이 넘는다. 먼저 그 학생들이 받을 상처가 마음에 걸렸다. 뿐만 아니다. 지방대학에 있지만 서울의 어느 대학 교수들보다 제자들을 더 훌륭하게 가르치고 키워내는 지방대학 교수들이 입을 자존심의 상처는 또 어떤가? 단지 지방대학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2등급 학생, 2류 교수 취급받는 이 현실을 그대로 가지고, 과연 우리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일까? 명문 스탠퍼드대학교,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는 미국의 수도에 있지 않다. 쓰쿠바대학교도 당연히 일본의 수도 도쿄에 있지 않고, 신흥 명문 요크대학교도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세계적 수준의 길림대학교, 남경대학교 등도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아주 먼 곳에 위치해 있다. 왜 우리는 대학마저도 서울에 있어야 일류 대접받고, 왜 교수들마저도 그 복잡한 서울의 대학에 있어야 일류 교수 대접받는 것일까?

한마디로 고약한 ‘서울중심병’인 것이다. 오죽하면 서울을 다른 도시들과 구별되는 특별시라고, 그것도 아예 법으로 이름 붙였을까? 이 고약한 서울중심병을 치유하지 않고서는 전 국민의 반 이상이 단지 서울권에 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우울한 서울중심병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무조건 서울로만 향하려는 대학 입학생들과 교수와 구직 청년들과 기업들을 막을 재간이 없다. 서울은 계속 과밀해질 것이고 지방은 계속 비어갈 것이다. 서울 시민들이 과밀과 비만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갈 것이고, 지방은 과소와 빈혈로 신음하면서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부담이 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이 고질적인 서울중심병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권한과 돈과 사람이 지나칠 정도로 서울에 몰려 있게 한 오랜 중앙집권-서울집중 정책과 그로 인한 서울중심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의 과도한 서울중심병도 수십 년에 걸쳐 고착되어온 중앙집권-서울집중 구조가 빚어낸 자연스런 결과인 것이다.

서울-지방 균형 확보돼야

국민 인식에 광범위하게 깔려 있는 서울중심병. 아이를 공부시킬 때도 서울로 보내야 하고, 집 한 칸을 사도 서울에 사둬야 이익이 되는, 이 어이없는 서울중심병을 고쳐야 한다. 사업을 해도 서울서 해야 하고, 직장도 서울서 구해야 한다고 믿는 이 슬픈 서울중심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서울중심 구조’, ‘서울공화국 구조’를 수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서울권과 지방이 어느 정도의 균형을 확보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지방에 정책적으로 투자하고 권한을 이양해야 한다.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돈과 사람을 지방으로 분산시켜 가야 한다. 한마디로 지방의 기업과 대학, 자치단체들을 정책적으로 배려하며 키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처럼 각 지방도 각각의 강점과 특징을 살려 세계의 도시들과 경쟁해 갈 수 있도록 일으켜 세워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서울에 살지 않는 국민들도 서울시민과 똑같은 국민으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울한 제안이지만 나라의 경쟁력과 나라의 내일을 위해 절박한 제안이기도 하다.

홍덕률 대구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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