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그림] (28) 발 담그고 세상 떠올리니 기사의 사진

시원한 여름나기에 묘수랄 게 없던 시절, 물은 참 고마운 싼거리였다. 산지사방에 냇가, 강가, 바닷가가 지천이라 여기 덤벙 저기 풍덩하는 새 여름이 갔다. 미역이 마땅찮은 산골은 물맞이가 제격이다. 폭포수가 뒤통수로 떨어져 더위 먹은 정신이 깬다.

목물도 버금간다. 찬 우물물 한 바가지가 등짝에 쏟아지면 뼈가 시리고 멀쩡한 아랫것이 자라자지마냥 오그라든다. 푹푹 삶고 물쿠는 삼복인데, 양반인들 틀거지 따질까. 우선 벗고 볼 일이다. 벗되 다 벗을 순 없는 노릇이고, 바지자락 둥개둥개 무릎까지 걷어 올려 흐르는 물에 발만 담근다. 이게 탁족(濯足)이다.

탁족은 혈액순환을 돕는 족욕(足浴)과 다르다. 더위 쫓기와 처신 살피기를 겸한, 두 벌 몫을 하는 게 탁족이다. 더위는 쫓는다 치고, 무슨 몸가짐을 살피란 말인가. ‘초사’에 나온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닦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물은 늘 맑거나 노상 흐린 법이 없다. 남 탓, 이웃 핑계는 그만두고 세태에 맞춰 처신하라는 얘기다.

계곡의 나무그늘 아래서 탁족하는 이 노인, 다부진 생김새가 도인이나 선비풍은 아니다. 승적에 있는 몸일 텐데, 골상이 옹글고 장딴지가 알배기인 모습이 빼닮은 듯 실감난다. 뛰어난 사생 능력을 지닌 조영석의 솜씨다. 이 그림은 탁족을 유유자적하는 양반 놀음으로 보지 않는다. 주인공의 낯빛에서 도리어 오불관언하는 낌새가 엿보인다. 조금 벗고도 한껏 시원한 피서, 탁족의 즐거움이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학고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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