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인사이드-이광형] 광화문을 광화문답게 기사의 사진

막바지 복원공사가 한창인 광화문을 두고 말들이 많다. 오는 8월 15일 광복절에 일반 공개되는 광화문의 완공 시점을 당초 올 연말에서 9월 말로 앞당긴 데 이어 다시 이달 말로 공기(工期)를 단축했으니 졸속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광복절 공개에 맞춰 공사를 서두르다 보니 부실이라는 비난의 목소리도 들린다.

관리주체인 문화재청은 “올 연말 완공을 목표로 삼았으나 공기를 넉넉하게 잡은 데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 광복절 공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3년간의 공기 중에 목재 등 웬만한 자재는 미리 준비를 해두었기 때문에 각 분야 장인들의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면 5개월 정도의 공기 단축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이다.

문화재청의 이 해명은 전통 건축 분야 장인들의 날렵한 솜씨를 감안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공기 단축의 과정이 문제다. G20 서울 정상회의(11월) 때 보여주기 위해 공기를 앞당긴 것도 그렇고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광복절에 뭔가 의미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겠다는 것도 그렇고 국민들의 의견은 별로 안중에 없었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이 광화문의 관리주체인 것은 틀림없지만 자기네 소유물은 아니다. 그것은 엄연히 국가 지정 문화재이고 국민의 것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중요한 공기 단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숭례문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 내 완공을 위해 서두르고 있다는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이왕 뜻 깊은 광복절에 광화문을 공개키로 했으니 더 이상의 논란은 불필요하다. 만반의 준비만 필요할 뿐이다. 광화문은 시련과 오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한 한국사의 현장이나 다름없다. 조선 태조 4년(1395) 경복궁 정문으로 건립됐으나 임진왜란(1592)으로 소실됐다. 이후 고종 2년(1865)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중건됐다.

그러다 1926년 일제의 조선총독부 청사 신축으로 경복궁 건춘문 북쪽으로 이전됐고, 1950년 한국전쟁으로 육축(陸築·성문을 세우기 위해 큰 돌로 만든 기단) 위 문루(門樓)가 불타 없어져 68년 당시 중앙청 축에 맞춰 재건됐다. 그러나 원래 위치에서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경복궁 중심축에서 반시계방향으로 3.75도 틀어진 채 철근콘크리트로 지어졌다.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이 시작된 것은 2006년 10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시절이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광화문 한글 현판을 내리는 문제로 좌우익 사이에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현판을 누가 썼건 엄연한 역사물인데 굳이 떼어낼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의견에 유 전 청장은 “문화재 복원은 원형대로 하는 게 원칙”이라고 맞섰다.

사실 이때도 문화재청은 광화문이 자기 것인 양 국민들의 의견수렴 없이 현판 교체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했다. 복원되는 광화문 현판은 고종 중건 당시 공사책임자인 영건도감제조 임태영(任泰瑛)이 쓴 한자 현판을 디지털 복원해 설치한다. 이를 두고도 논란이 없지 않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 동상 바로 뒤에 광화문 한자 현판이 웬말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현판 철거 때는 박수치며 환호하던 사람들이 광화문 공개 한 달도 남겨 놓지 않은 시점에서 시비를 건다. 당시 현판을 원형대로 복원하겠다는 유 전 청장의 계획에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광화문 현판이 한글이냐 한자냐는 것보다는 정부의 공개 행사를 공연히 트집 잡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이다.

서울의 얼굴이자 한국의 간판인 광화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행여 조금이라도 잘못이 드러난다면 공기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서두를 일이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근거도 없이 졸속이니 부실이니 하면서 흠집을 내는 것은 곤란하다. 광화문을 정치적인 도구로 삼아서는 더욱 안 된다.

이광형 문화과학부선임기자 g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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