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용 칼럼] 동해안에 노 났다는데… 기사의 사진

“저질 연고주의는 나라 좀먹는 해충. 공직사회 사조직 당장 해체시켜야”

중국 전국시대에 한비자(韓非子·BC 280∼233)가 체계화한 법가주의 사상은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법치주의(法治主義), 관리를 다스리기 위한 술치주의(術治主義), 군주 자신에게는 세치주의(勢治主義)가 필요하다는 ‘법술 이론’으로 돼 있다.

주관 개입이 다분한 온정적 인물정치를 배격하고, 관료들에 의한 국가 권력의 농단을 막기 위해 관료에 대한 통제와 법치를 강화해야 군주의 절대권력이 확보된다는 철학이다.

특히 술치주의는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한다. 군주는 충신과 간신을 잘 구분하고, 상벌을 엄격히 해야 관리들이 두려워하게 된다. 세치주의는 신하가 복종하는 것은 군주의 세력이지 덕행이나 재능 때문이 아니라는 사상이다.

여권 내 권력투쟁으로 번진 ‘영포라인’과 선진국민연대 파문을 보며 문득 한비자가 떠올랐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외곽조직이던 선진국민연대는 정부 출범 이후 “요직을 모두 차지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대통령에게 충성한답시고 호가호위하며 권력을 사유화해왔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비선라인은 KB금융 회장 인선에 개입하는 등 금융권에 전방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을 불법 사찰하고 보고 체계도 무시하는 월권을 저질렀다. 2003년 민영화된 국민은행을 “아직 국책은행인 줄 알았다”는 변명이 가당키나 한가? 어떤 비호세력이 있기에 사정기관들도 이들의 전횡을 눈감아 준 건가. 이런 거짓말과 오만으로 권력의 사유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자들에게 연민마저 느껴진다.

이 모든 사달은 지연·학연과 정치 배경이 같은 연고주의에서 발생한다. 세상 모든 일은 사람을 통해 이뤄지므로 인맥은 물론 중요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큰일을 해 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연고주의가 집단의 이익과 사욕의 도구가 되면 불공정 경쟁과 사회악의 소굴이 된다는 점이다. 1992년 공직자들이 부산 초원복집에 모여서 ‘우리가 남이가’라며 특정 후보 지지를 밀약했던 저질 연고주의가 우리 사회에 잔존해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학연·지연 등을 빌미로 손쉽게 ‘형과 아우의 관계’를 맺은 후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편 봐주기’를 일삼는 그릇된 관행이 사회 도처에 남아있었다는 얘기다. 잘나가는 사람들끼리의 연줄은 권력을 매개로 이권화 된다. 조직폭력배의 정의와 의리로 타락하기 십상이다.

“이렇게 물 좋은 때 고향발전 못 시키면 죄인이 된다.” “속된 말로 동해안에 노 났다. 우리 지역구에도 콩고물이 떨어지고 있다.” 2008년 영포목우회 송년의 밤 행사 때 포항시장과 국회의원 등 ‘우리끼리’가 나눈 발언이다.

공직사회에서 대통령과 동향 인사들로 구성된 영포라인은 ‘성골’로, TK출신은 ‘진골’로 불린다고 한다. 영포목우회는 중앙부처 5급 이상 공무원이 모인 친목단체다. 5급 이상이면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공무원들은 인사에 민감한 신분 때문에 ‘그들만의 리그’를 즐긴다.

‘선거에 이겼으니 승자독식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면 사회와 정치는 발전할 수 없다. 지난해 초 250여명의 선진국민연대 출신이 참석한 청와대 만찬에서 사회자가 “공기업 감사는 너무 많아 소개를 생략한다”고 했을 정도라니 ‘형제들’의 자리 챙겨주기가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이 간다.

한비자의 저서 중 ‘나라를 좀먹는 다섯 마리의 해충’을 뜻하는 ‘오두’의 4항은 ‘의협(義俠)을 내세워 무리를 모은 후 멋대로 국법을 어기는 협객’을 예로 들고 있다.

경쟁이 아닌 연줄이, 제도가 아닌 사람이 결정하는 조직은 망조가 드는 지름길이다. 공직사회에서 학연·지연에 바탕을 둔 모든 사조직은 하루빨리 해체돼야 한다. 자진해서 안 하면 대통령이 지휘하라. 그것만이 우리가 진정한 민주 경쟁사회로 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수석 논설위원 hy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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