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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집권당의 초라한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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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꽃 핀 감자 캐보나 마나 자주감자라 했다. 지난주 한나라당의 전당대회를 보고 옛말 그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끝까지 안 봐도 그 실망스런 결과를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명색이 집권당 전당대회인데도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6·2 지방선거에 참패한 한나라당이 국민 앞에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그러나 저 당이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구나 하는 인상만 남겼다.

먼저, 당의 에이스들, 즉 대통령 후보감들이 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도부 경선이 주전들은 빠지고 2군 선수들이 출전한 마이너리그여서 흥행에 실패한 것이다. 다음, 출전 선수들의 실력이 너무 수준 이하였기 때문이었다. 마이너리그였을망정 선수들이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더라면 박수를 받았을 터인데, 보여준 건 유감스럽게도 추태였다. 집권당의 전당대회라면 세계 속의 한국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비전을 국민 앞에 제시하는 마당이어야 한다. 예컨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세계경제 위기를, 이념과 세대와 계층 간의 갈등을 어찌 풀 것인지 등 문제 진단과 해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토론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리고 차세대 국가 지도자가 혜성같이 나타나 새바람을 일으키는 무대도 대개는 주요 정당의 전당대회다.

당의 화합이 비전인가

그런데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 제1의 어젠다는 뭐였는가. 당의 화합이었다. 대표나 최고위원 후보마다 자신만이 당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최적임자임을 호소했다. 안상수 신임 당 대표도 수락연설에서 제1성으로 “이제부터 친박이고 친이고 없다”는 말로 당의 화합을 강조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당의 전당대회 모습으로는 좀 허전하다. 국민 앞에 제시하는 제1의 과제이자 목표가 나라를 어디로 이끌어 국민이 잘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라니 초라한 초상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 당의 화합이라는 그 약소한 다짐만이라도 지켜지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은 전당대회를 계기로 오히려 더 갈라지고 갈등하는 모습이다. 종래 친이명박의 주류와 친박근혜의 비주류 둘로 나뉘던 계파가 지금은 주류마저 세포 분열 중이다. 같은 주류였으면서도 당 대표 경선에서 안 의원에 밀려 2위를 한 홍준표 최고위원은 경선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며 비주류로 남아 안 대표의 당 운영을 견제하겠다고 공언했다. 역시 주류로서 이른바 이상득 계의 실세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정두언 최고위원, 지도부 입성에 실패한 소장 쇄신파 등도 나름의 세력을 형성할 낌새다.

한나라당의 전당대회가 이처럼 수준 이하로 끝나고 계파의 핵분열이라는 후유증까지 안게 된 것은 도토리들의 키 재기 경쟁에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지도부 경합자들이 국가발전 전략을 놓고 다투는 게 아니라 상대방 비난에 주력했으니 어쩌겠는가. 후보들의 비전 발표회라는 이름의 토론회에서마저 비전 제시는 없고 (상대방의 병역 기피 의혹 제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개 문제로 이웃집을 고소한 일을 놓고 핏대를 세웠으니 “개판”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무리가 아니다.

정치의 차원을 높여라

당의 화합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주·비주류의 갈등으로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 정권으로서는 그게 가장 절실한 과제일 수도 있다. 또 정치판에서 권력투쟁은 자연스런 것으로 탓할 일이 아니다. 그것이 건전한 방식으로만 진행된다면 선의의 경쟁으로 정치발전에 긍정적 요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시쳇말로 한나라당의 집안문제다. 집안문제는 집안에서 풀어야지, 이를 국민 앞에 들고 나와 축제여야 할 전당대회에서까지 드잡이를 하는 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인류를 향한 외침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차원 높은 국가적 어젠다를 갖고 깊이 고민하고 진지하게 논쟁하는 집권당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아직도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얼굴들을 볼 때마다 새 시대의 도래와 함께 차세대를 이끌 신인에의 대망은 더 커져만 간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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