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호철] 모라토리엄 선언 기사의 사진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날아온 소식은 충격이었다. 인공섬 건설 등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국영개발업체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엄(채무지급유예)’을 선언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세계 금융시장은 물론 우리 금융시장도 큰 혼란에 빠졌다. 두바이의 경우 대외 신인도가 떨어졌고 구조조정 등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닮은꼴의 도시가 최근 나왔다. ‘부자도시’로 손꼽히며 호화청사를 지었던 경기도 성남시가 느닷없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판교 특별회계에서 빼다 쓴 5200억원 가운데 올해 갚아야 할 일부에 대해 지급유예를 선언했다. 재정자립도가 전국 시 평균(40%)보다 37% 포인트나 높고 사업비 3222억원의 호화 청사를 건립할 정도로 여유로운 살림을 해 온 터여서 놀라움은 더 컸다.

일각에서는 ‘시 재정이 정말 그 정도로 파탄이 났나’ 하는 의문과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됐다. 8년간 성남을 이끌어온 한나라당 이대엽 전 시장의 실정을 부각시킴으로써 시민을 위한 행정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민주당 시장으로서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해석도 나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사태는 일파만파로 번졌다. 성남시뿐 아니라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방만한 재정 운용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대전 동구도 신청사를 짓다 사업비가 바닥나자 지난달 20일 공정 47% 상태에서 공사를 중단했고 부산 북구는 신청사 부지매입 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15억원의 지연손해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최근 새로 건립됐거나 건립 중인 지자체 청사는 이들 외에도 서울시 및 용산·관악·마포·금천·성북구, 경기도 이천·광주시,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용인시 수지구, 부산시 남구, 광주 서구, 충남도 및 당진군, 강원도 원주시, 경북 포항시, 경남 사천시, 전북 임실·완주·부안군, 전남 신안군 등 적지 않다. 모라토리엄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했다.

행안부 자료를 보면 막연한 우려는 아닌 듯싶다. 전국 지자체 예산 중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통해 자체 조달하는 비율(재정자립도)은 52%밖에 안 된다. 통합재정수지는 2008년 20조원 흑자에서 지난해 7조원 적자로 돌아섰다. 지방채 잔액은 작년에만 32% 늘어 25조5531억원에 달했다.

지방 공기업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2008년 387개 지방 공기업의 누적부채가 47조3200억원으로 5년 새 2.2배로 불었다. 올해 정부가 지출할 292조8000억원의 16.2% 수준이다. 지자체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부산 남구, 대전 동구를 비롯해 137개 시·군·구는 올해 거둬들일 지방세로 인건비조차 충당하지 못할 정도다.

지자체장의 방만한 재정운용이 주요인으로 꼽힌다. 부동산 등 경기회복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다 부자세 감면으로 거둬들일 세수가 감소했지만 각 지자체는 호화청사를 짓거나 중복되는 축제 등으로 많은 돈을 썼다. 2005년 이후 18개 지자체가 청사 신축 등에 쓴 돈만 1조9281억원에 이르니 재정 적자는 불 보듯 뻔했던 셈이다. 자신의 업적을 쌓으려는 욕심으로 인해 합리적인 판단은 뒷전이었다.

더 늦기 전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뒤따라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이 포퓰리즘에 젖어 무리한 투자사업을 벌이고 호화청사와 축제로 예산을 낭비할 때 감시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재정이 파탄나면 결국 고생하는 것은 지역주민인 만큼 지방의회는 물론 주민도 적극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지자체에게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요구해야 한다.

두바이는 이제 미약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지자체도 화려한 겉모양보다 내실을 택하는 지혜를 보여 하루빨리 건전한 재정 상태를 확보하기 기대한다.

남호철 사회2부장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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