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29) 수박은 먹는 놈이 임자? 기사의 사진

정선은 ‘진경산수의 대가’다. 참다운 풍경은 있는 풍경이다. 그는 실재하는 것을 존중했고, 예술의 아우라가 현실에서 태어남을 믿었다. 그는 또 ‘화성(畵聖)’으로 불린다. 성(聖)의 반열에 오른 그는 속(俗)에서 답을 찾았다. 하늘을 나는 학과 들판을 쏘다니는 쥐를 함께 그렸다.

달개비 꽃 싱그러운 시골 텃밭. 쥐들이 사람 눈에 들킬세라 잽싸게 수박을 갉아먹는다. 짙푸른 덩굴 아래 수박은 방구리만 한데 아뿔싸, 밑동에 벌써 파먹은 자국과 분홍빛 속살이 드러났다. 한 놈이 고개를 쳐들고 주변을 살피는 사이, 다른 놈은 바닥에 떨어진 열매살까지 죄 먹어치운다. 이런 경을 칠 놈들, 농부가 알면 길길이 뛰겠다.

수박은 씨가 많고 쥐는 새끼가 많다. 둘 다 다산을 상징하는 소재다. 이 그림에서 자식 복을 들먹이면 욕먹는다. 애써 가꾼 과실 채소를 망치는 음충맞은 쥐새끼들 아닌가. 정선의 그림은 깔축없는 풍자화다. 간신과 탐관오리를 흔히 쥐에 빗댄다. 집쥐 들쥐 얄미워도 관청에 숨어사는 쥐는 아예 공공의 적이다. 당나라 조업이 지은 시에도 나온다. ‘양곡 창고 늙은 쥐 크기가 됫박만 한데/ 사람이 창고를 열어도 달아나지 않네/ 병사는 양식 없고 백성은 굶주리는데/ 누가 아침마다 너에게 먹을 것 바치는가’

수박과 쥐는 16세기 신사임당도 그리고 18세기 정선도 그렸다. 그 쥐가 살아서 지금도 도둑질한다. 나라의 혈세를 빼먹고 시민의 지갑을 턴다. 쥐가 얼마나 지독한지 꼼꼼히 보면 안다. 이 그림은 비단 위에 그렸다. 그 비단마저 어귀어귀 파먹었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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