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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도깨비불 키우는 왕버들

[고규홍의 식물이야기] 도깨비불 키우는 왕버들 기사의 사진

‘도깨비나무’라는 별명의 나무가 있다. 납량특집 드라마가 한창인 한여름 밤이면 나무 주위에 희부윰한 도깨비불이 번쩍거리며 날아다니는 까닭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드라마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농촌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도깨비나무라는 별명을 가진 이 나무는 경기도 이남 지역에서 잘 자라는 버드나무 종류의 하나인 왕버들이다. 버드나무 종류의 나무들은 모두 물과 친한 성질이어서 대개는 개울이나 연못 가장자리에서 자란다. 그러다보니 나무줄기는 습기가 가득차 있게 마련이다. 마를 새 없는 나무줄기는 시간이 흐르면서 썩어들기 쉽다. 특히 비가 많이 내려 공기가 습한 여름이면 부식은 더 심해진다. 그러다보면 줄기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리는 건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구멍이 바로 도깨비 소굴이다.

하루살이를 비롯해 여름철 날벌레들이 우연찮게 이 구멍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구멍은 생각보다 깊어서 어두운 안쪽에 들어간 벌레들은 일쑤 되돌아나오는 길을 잃곤 한다. 하릴없이 어두운 구멍 안에서 시체가 되어 쌓이게 된다. 때로는 들쥐와 같은 설치류도 그 구멍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벌레나 설치류의 시체에는 스스로 빛을 발하는 인(燐) 성분이 있는데, 성냥의 원료로도 쓰이는 인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더 반짝거린다. 게다가 이 음울한 빛은 흐르는 바람을 따라 춤추듯 흔들리는데, 이 빛의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던 옛 사람들은 이를 도깨비불이라고 부른 것이다. 도깨비불이 살아 머무는 왕버들을 도깨비나무, 혹은 ‘도깨비버들’이라고 했다. 한자로도 ‘귀류(鬼柳)’라고 썼다.

물과 친한 왕버들은 심지어 연못 한가운데에서도 잘 자란다. 영화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진 경북 청송의 주산지는 오랜 세월 연못 속에서 크게 자란 여러 그루의 왕버들을 볼 수 있다.

흔히 버드나무를 이야기하면 가지가 땅으로 길게 늘어지는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버드나무 종류에는 버들피리를 만드는 데 쓰는 갯버들, 가지가 배배 꼬이며 솟아오르는 용버들을 비롯해 40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왕버들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오르며 사방으로 넓게 퍼져 그늘을 짓기 때문에 농촌에서 정자나무로도 많이 심어 키운다. 크고 굵은 줄기로 웅장하게 자라는 왕버들은 왕의 기품을 갖춘 우리의 대표 버드나무라 할 만하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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