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영미] 여기자 실직 사건 기사의 사진

건드리면 터지는 뇌관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미국 제1뇌관은 인종이다. 노예제를 뿌리로 한 흑인 차별이 씨줄이라면, 신규로 진입한 라틴계 등의 이민 문제는 날줄이다. 지적 활력 같은 이민의 장점과 미국적 정체성을 부르짖는 순혈주의는 예기치 못한 시공간에서 부딪치곤 한다. 최근 또 다른 뇌관의 유력 용의자 하나를 발견했다. 이스라엘이다.

한 달 간격으로 미국의 쟁쟁한 여성 언론인 두 명이 직장을 잃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1만 번 이상 아침을 맞고, 수천 권의 취재노트를 썼다”고 회고한 백악관 최장수 기자 헬렌 토머스와 옥타비아 나스르 CNN 중동담당 편집장이다. 실직 사유는 말실수였다.

토머스는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50년간 대통령 10명을 지켜본 베테랑 정치기자다. 반세기 경력은 백악관 파티에서 나눈 몇 분 대화로 끝장났다. 유대교 성직자를 향해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서 꺼지라”고 한 것이다. 이번에는 나스르 편집장. 지난 4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정신적 지도자로 알려진 모하메드 후세인 파드랄라의 사망 소식에 이런 트윗을 올렸다가 뭇매를 맞았다. “파드랄라 사망 소식에 슬퍼지네요. 존경하는 헤즈볼라 영웅 중 한 명인데….”

응징은 빠르고 일사불란했다. 정치인은 꾸짖고, 독자는 돌을 던지고, 동료는 등을 돌렸다. 한 해 전 컵케이크로 그녀의 89세 생일을 축하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굳은 표정으로 ‘변명할 수 없는 모욕적’ 발언을 비난했다. 강연전문회사와 공동저자는 계약해지를 요구했다. 고교 졸업식 축사는 취소됐다. 우군은 없었다. 토머스가 속한 허스트코퍼레이션과 나스르의 직장 CNN에는 시민의 항의전화와 댓글이 빗발쳤다. 어느 순간, 두 사람 이마에는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 옹호자’의 딱지가 붙었다. 나스르의 해고가 결정되는 데는 고작 3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토머스는 11일 만에 사직했다.

둘의 발언이 반사회적 주장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토머스 말을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에 의해 무력 점령됐다. 따라서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에게 그들의 땅을 돌려줘야 한다.’ 두 줄 문장은 지난 60년 팔레스타인 영토분쟁을 바라보는 가장 유력하고, 대중적인 시선 중 하나로 소비돼 왔다. 반론도 격렬하다. 이스라엘 건국을 ‘잃어버린 옛 영토를 찾은 디아스포라의 귀환’으로 규정한 목소리다. 두 해석은 충돌하고 다투며 국제정치무대에서 유통돼 왔다. 그게 현실이다. 그 중 하나의 시선을 인정하지 않는 건 최소 20% 지구인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이다.

파드랄라는 논쟁적 인물이다. 다만 글로벌 무대에서 파드랄라와 헤즈볼라의 물리적 연관성은 확인된 적이 없다. 파드랄라의 이름 앞에 붙는 ‘정신적’ 지도자란 수식어는 증거불충분의 증거이다. 파드랄라가 미국 정부를 증오한다는 건 아마도 진실일 것이다. 미국이 애써 외면한 건 그가 백악관만큼이나 알카에다의 9·11테러를 혐오한다는 사실이다. 파드랄라는 이슬람 지도자로는 드물게 남녀평등을 주장하고 명예살인을 반대해 왔다. 불행하게도 나스르가 무슬림 여성 인권에 대한 파드랄라의 기여를 말했을 때 귀 기울인 이는 없었다.

사건이 커진 데는 두 여기자의 출신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둘은 레바논계 이주민이다. 아랍계 이방인의 이스라엘 비판은 이스라엘이란 화약을 인종이란 뇌관으로 터뜨린 것과 같았다. 폭발력이 배가됐음은 물론이다.

서아시아의 전략적 이해에서 한 발 떨어진 변방의 논리로 말하자면, 여기자에 대한 미국 사회의 집단 린치는 단연코 비이성적이었다. 다행히 교훈이 없지 않다. 누구에게든 분별력을 잃을 만큼 화가 날 때가 있다. 집단도 마찬가지다. 비교적 개방적인 사회가 대화를 끊고 분노를 터뜨리는 지점이 있다. 미국인에게 여기자 실직 사건은 이를테면 그런 급소였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사회가 가장 엄격한 얼굴을 하는 순간, 그 사회의 아킬레스건은 폭로된다. 이번에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미국의 민낯을 제대로 목격했다. 그들이 안은 고민과 숙제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이영미 특집기획부 차장 ymle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