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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게으름의 달인 나무늘보

[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게으름의 달인 나무늘보 기사의 사진

성격이 느긋한 사람을 보면 저렇게 느려서 어떻게 험한 세상을 살아갈까 싶다며 늘보라고 놀린다. 하지만 아무리 느려도 나름대로 세상 사는 재주는 다 있는 법이다. 늘보하면 떠오르는 나무늘보는 1분에 1.8∼2.4m를 움직이고, 하루 중 15∼18시간은 잠을 자야 하지만 아직껏 잘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나무늘보가 순탄한 세월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오래전 떨어져 있던 남아메리카대륙이 북아메리카대륙과 다시 만났을 때 두 대륙에는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가 불어 닥쳤고, 북미대륙으로부터 날카로운 어금니와 발톱으로 무장한 포식자들이 새로운 세상을 찾아 남미대륙으로 몰려왔다.

이 때부터 나무늘보는 자신들보다 훨씬 더 크고 재빨랐던 무서운 포식자를 상대해야 했다. 시련 속에서 무수히 많은 나무늘보의 사촌들은 멸종되고 말았다. 그런데, 유독 느리고, 나무에 매달릴 때 쓰는 긴 갈고리 발톱을 제외하고는 무기랄 것도 없는 나무늘보가 살아남았다. 나무늘보는 남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라질까를 고민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더 느려질까를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움직이거나 아예 몇 시간이고 털뭉치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보내는 동안 늘보의 털에는 이끼가 자라서 멀리서 보면 나무의 혹이나 흰개미둥지처럼 보이게 했고, 이런 위장술로 포식자의 눈을 피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오랫동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살다 보니 몸안의 내장 기관들도 위아래 위치가 바뀌었다. 몸에 난 털은 배에서 등 쪽으로 나있어서 거꾸로 매달려 있을 때 빗물이 배에 고이지 않고 털을 타고 흘러내리게 해준다.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포식자는 피했지만 다른 동물들이 먹는 잘 익은 과일이나 고소한 벌레 같은 먹이를 찾아나서는 일은 꿈도 못 꾸게 되었다. 대신 아무도 먹지 않는 딱딱한 나뭇잎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가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리는 일이다 보니 나무늘보는 매달린 채로 짝짓기를 하고 새끼도 출산한다. 그래서 나뭇가지에 매달리는 앞발과 어깨 근육이 몸 전체 근육의 25%를 차지하고, 대신 뒷다리에는 근육이 거의 없어서 땅에서는 앞발로 몸을 끌듯이 기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나무늘보는 재규어나 날카로운 독수리의 눈을 피해서 살아남는 법은 익혔지만 불행히도 매달릴 나무를 베어버리고 밀림에 길을 내는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은 아직 익히지 못했다. 그래서 다른 야생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나무늘보에게도 사람이 가장 큰 위협이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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