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박정태] 일본에 正義를 묻는다 기사의 사진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 책임을 인정해 사죄하고 생존자와 이스라엘을 상대로 수백억 달러 상당의 배상금을 지출했다…. 일본은 전쟁에서 저지른 만행을 사죄하는 데 인색했다…. 미국에선 노예제와 관련해 흑인에 대한 배상운동이 제자리걸음인 반면 공식 사죄만은 2007년부터 버지니아주를 비롯해 여러 주에서 쏟아져 나왔다….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조상의 잘못에 책임져야 하는가?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저자인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던진 질문이다. 저자는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를 댄다. 아울러 사죄 반대자들이 내세우는 논리에도 초점을 맞춘다. 집단적 책임의식이냐? 도덕적 개인주의냐? 즉답은 없다. 책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의 답은 스스로 찾는 수밖에 없다. 단지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게 저자의 의도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책의 저류에 흐르는 건 공동선(共同善)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 이제 답을 찾아야 한다. 미로를 뱅뱅 도는 것은 99년째로 족하다. 답은 가해자인 일본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 특히 1930년대부터 1945년 광복 때까지 징용, 근로정신대, 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된 피해자들의 한(恨)을 풀어줘야 한다. 올해, 아니 8월을 넘기면 일본으로선 다시는 기회가 없다. 8월은, 뒤늦었지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역사의 마지막 분수령이다.

답을 찾는데 미력한 힘이라도 되고자 국민일보는 지난 3월부터 경술국치 100년 기획으로 ‘잊혀진 만행…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시리즈를 연재해 오고 있다. 일본과 러시아 사할린, 남양군도 등 강제동원 지역은 물론 중국 독일에 대한 해외취재를 통해 한 맺힌 역사를 재조명하는 한편 미래지향적 해법을 모색 중이다. 다음달 마침표를 찍는 이번 시리즈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촉구하며 여론을 환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이달 들어 일본 측이 변화 조짐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관방장관과 외상이 잇달아 전후 처리 불충분, 사죄 문제를 언급했다. 대표적 전범기업 미쓰비시도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보상 문제를 다룰 협상 테이블에 앉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가 다음달 발표할 담화 내용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를 표명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수준을 뛰어넘을지는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후에도 고위 관료들의 망언이 수차례 되풀이되지 않았던가. 수사(修辭)보다는 진정성이다. 피해 배상, 약탈 문화재 반환 등 구체적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한 세기 불신의 벽을 깰 수 있다.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우리 정부의 소극적 태도는 질책받아 마땅하다. 가장 의미 있는 100주년을 맞았는데도 강제동원 피해조사 업무를 담당하는 국무총리 산하 위원회의 예산과 조직, 기능은 올해 축소됐다. “정부가 위원회 활동에 대해 지침을 내린 적도 없지만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위원장 활동을 지난 12일 마친 김창국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언급한 말이다. 각종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바라보는 정부 시각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등 피해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에도 방관자적 자세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입장에서 정부가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1972년 중·일공동성명에 전쟁배상 청구권 포기 항목이 있음에도 정부 청구권과 민간인 청구권은 다르다고 반박해 온 중국 정부의 모습이 부러울 따름이다.

정답은 가까이 있다. 우리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일본도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 가까운 이웃이요 동반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 그것이 이 땅의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다.

박정태 특집기획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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