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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선 기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취재 후기'


[미션라이프]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됐다 풀려난 사람들. 그들을 만나는 일도, 그들로부터 당시 상황을 듣는 일도 쉽지 않았다. 상처 투성이였다. 살아 돌아온 사실이 “죄송했다”던 그들이었다.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샘물교회’라는 이름 만으로도 사회는 물론이고 교계에서조차 ‘주홍글씨’가 새겨졌더랬다. 여론의 뭇매와 위험 수위의 악플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침묵 뿐이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박은조 목사를 만나다

이달 초 교회에 전화를 걸었다. 박은조 목사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유선상으로는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신 공문으로 요청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인터뷰 요청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3년 전과는 달랐다. 딱딱한 형식의 공문 대신 짧은 편지를 올렸다.

며칠 뒤 박 목사가 직접 전화를 줬고, 바로 약속 날짜가 잡혔다.

박 목사의 표정은 밝고 온화했다. 피랍 당시 마주쳤던 날카롭고 긴장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는 성남지역의 소외된 계층을 돕는 일을 여러 각도로 진행중이었다. 무상급식에서부터 저소득층 가정 자녀 1대 1 과외, 반찬 배달, 노숙자 쉼터 마련 등. 아프가니스탄 피랍 3주년을 맞아 추모관 건립도 추진중이었다. 고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의 뜻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당시 얘기가 나왔다.

박 목사는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굳이 나서서 해명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20년, 30년 지나면 알려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시간여 넘게 대화를 나눴다. 오해와 오보가 무성했던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오해와 오보

버스 얘기만 해도 그랬다. 피랍자 23명을 태운 대형 버스가 ‘벤츠’였던 게 논란이 됐었다. 문제의 벤츠 버스는 에어컨도 나오지 않을뿐더러 시동 조차 잘 걸리지 않는 폐차 직전의 버스였다. 총격의 흔적도 군데 군데 있었다.

납치되기 직전 쇼핑을 즐겼다는 보도도 있었다. 피랍자들은 19일 납치 당일 오전 10시40분쯤 아리랑 식당에서 나와 주유소에 한 번 들렀다. 주유도 하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말하는 화장실은 공터다. 주유소 앞에는 현지인이 좌판을 깔고 무언가를 팔고 있긴 했다. 피랍자들은 섭씨 60도가 웃도는 더위에 흙모래가 뿌옇게 쌓인 좌판 위에 놓인 낡은 중고 물품에 과연 눈길이 갔겠냐고 반문했다.

허가 없이 출국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피랍자들은 “출국 전날까지도 만약 외통부나 현지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떠나지 않을 계획이었다”고 말했고, 박 목사는 “사전에 협의를 거쳐 결정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형규 목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떠돌았던 이야기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 배 목사의 죽음을 둘러싸고 ‘몸이 약해 사살했다’는 말이 나왔다. 배 목사는 앞서 북부지역 마자리샤리프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부터 몸살을 앓았다. 과로에 체력저하로 코피도 쏟았다. 하지만 건강상태가 살해의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탈레반은 피랍자들의 신상을 한국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입수할 수 있었고, 그 신상을 토대로 인솔자인 배 목사를 지목한 것으로 전해졌다.

언론과 네티즌

언론은 앞다퉈 피랍자들의 신상을 공개했다. 소속 교회와 나이, 신앙, 선교활동 내용 등등. 한국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외신을 통해 탈레반에게까지 전달됐다. 2004년 6월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에 김선일씨가 납치됐을 때도 언론은 재빠르게 김씨의 신상과 신앙까지 공개했었다. 일부 네티즌들은 그 와중에 '피랍자들이 기독교인이니 살해하라'는 내용이 담긴 글을 탈레반측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아프가니스탄 NGO 활동가인 윤주홍(48)씨는 “피랍 사태시 자국민을 최대한 보호하려는 다른 나라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며 “오히려 피랍자들을 지옥으로 몰고가는 형국이었다”고 회상했다.

해외 언론은 피랍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 피랍자의 이름, 나이 정도를 제외한 개인 신상은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만약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로이터 등 해외 언론에서 피랍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면 훨씬 일이 수월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실제 샘물교회 봉사단을 초기에 납치했던 탈레반은 이른바 ‘조무래기들’로 지역 ‘갱’이었다. 하지만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자 상부 정치조직으로 넘겼던 것이다.

죽음에 의연했던 사람들

피랍자들은 의연했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고, 살해 위협이 계속됐지만 그 누구도 흔들리지 않았다.

배 목사는 마치 예견한 듯 출국 전 ‘소망, 고난을 이기는 힘’이라는 설교에서 죽음에 대해 얘기했었다. “그리스도인이 죽음에 대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비참하고 불길하다고 벌벌 떠는 것은 이상한 현상입니다. 죽음에는 인생의 완성과 영생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구원의 확신이 이 땅의 슬픔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실제 죽음을 맞이하는 배 목사의 자세는 담대했다. 배 목사는 22명에게 “만약 한 두명이 처형돼야 한다면, 제가 1번이 되겠습니다”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이 나서자 “제 자리 넘보지 마십시오”라며 웃어 넘기기까지 했다. 생일인 7월25일 탈레반에 이름이 불리워졌을 때, “믿음으로 승리하십시오”라며 뒤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해 꼿꼿이 걸어갔던 배 목사다.

고 심성민씨도 마찬가지였다. 말 없이 주변을 섬기던 그는 늘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도왔고, 피랍 당시에도 함께 있던 다른 사람들을 챙겼다. 한국에 돌아가면 농업대학에 들어가 농촌을 살리고 싶다던 순박한 청년. 그 청년은 담담하게 탈레반에 끌려갔고, 그 뒤로 아무도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피랍자들은 모두 각자의 번호를 갖고 있었다. 죽는 순번이었다. 몰살 당하는 순간에도 모두는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한 일은 오직 기도 뿐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

송병우(36), 임현주(35)씨는 2년 전 백년가약을 맺었다. 임씨는 간호사 출신의 현지 선교사였고, 통역을 맡았었다. 임씨는 피랍 당시 스스로가 아닌 자신(임씨)을 위해 기도해주던 송씨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고, 송씨는 임씨의 용기있는 대처와 지혜로운 태도에 마음이 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한 아이의 부모로 일반 가정과 다름없는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먼저 석방됐던 김지나(35)씨도 샘물교회 성도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처형 순번을 전할 때 배 목사를 대신해서 ‘1번’을 맡겠다던 유경식(58) 장로는 현재 샘물교회 강도사로 일하고 있다. 유일한 두 자녀의 엄마였던 김윤영(38) 집사는 출판사(‘빛나는 새벽별’) 대표가 됐다. 1인 출판사로 지난 4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토이바’를 출간했다. 다음달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겪었던 일을 정리한 ‘아프가니스탄, 그 50일간의 여정’을 책으로 낸다.

21명 중 1~2명을 제외하고는 빠른 시일 안에 일상으로 복귀했다. 특히 외상후후유증 등 정신과 치료를 맡은 의료진은 빠른 회복에 놀라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샘안양병원 관계자는 “두어명을 빼고는 약물치료도 진행하지 않았고, 매우 빠르게 일상에 적응해나갔다”며 “이례적인 사례로 정신과 학회에 발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비난은 이제 그만

본보에 지난 24일자로 관련 기사가 나간 뒤에도 ‘악플’은 쇄도했다. 3년이 지난 지금에도 샘물교회는 지탄의 대상이 됐다. 교회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렇게까지 비판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사업가나 일반 방문객이었다면 어떠했을까.

위험지역에 단체로 선교활동을 떠난 것에는 문제가 있다. 탈레반에게 좋은 ‘먹잇감’을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자국민의 일이었다. 당시 정부의 개입 자체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자국민을 하루 빨리 구출해내는 것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탈레반측에 피랍자들을 죽이라는 글을 보낸 네티즌의 행동은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살인’에 가까웠다.

피랍자들은 지옥에서보다 더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희생자도 두 명이나 나왔다. 21명은 다행히 풀려났다. 제반 비용은 모두 교회와 가족들이 부담한 것으로 파악됐다. 3년간 쥐 죽은 듯 살아온 사람들이었고, 지금도 당시 사태와 관련해서는 쉽게 입을 열지 않는다. 그들도 느낀 것이 많고, 깨달은 바가 있을 것이다. 입국했을 때 “죄송합니다”라고 처음 말문을 뗐던 그들을 이젠 그만 놔줘야 할 때가 아닐까.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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