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말고 다 와 있는데 이리 와.”(황영시 1군단장)

“그래, 혼자서 다 해먹어. 나는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1979년 12월 12일 밤 10시16분 이루어진 통화에서 신군부 측은 장 사령관을 회유했으나 그는 끝내 거부하며 연행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다. 신군부측이 회유를 계속하자 장 사령관은 고함을 치며 전화를 끊는다. “반란군 새끼들, 내가 탱크로 다 밀어버릴 거야!”

장 사령관은 훗날 당시 상황에 대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하나회가 정 총장을 납치했을 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러나 진압책임을 맡은 내가 백기를 들 수는 없었고, 죽기로 결심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우리 시대 참 군인으로 일컬어지던 장태완 사령관이 지난 26일 별세하자 인터넷 공간에서는 네티즌들의 애도물결이 넘쳤다. 신군부에 저항해 반기를 든 그를 두고 네티즌들은 ‘진짜 군인’, ‘장포스’라고 칭송했다. 한 네티즌은 “장태완 같은 장군 몇 사람만 있었어도 전두환 쿠데타는 성공하지 못했고 광주 시민들도 처참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어떤 이는 “그나마 장태완 같은 군인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는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고 장 사령관 빈소에 당시 쿠데타 주역들 중 일부가 조문을 했다. 장 사령관 휘하의 30경비단장이면서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신군부 측에 섰던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그제 빈소를 찾았고, 하나회 총무를 지낸 이종구 전 국방장관도 같은 날 조문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조화를 보냈으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신군부 인사의 조문을 ‘화해의 손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나 만들기 위한 말일 뿐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쿠데타 주역들에게는 여전히 장 사령관이 좋게 표현해서 ‘철부지’일 뿐이리라.

장 사령관 빈소를 외면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며칠 전 타계한 소위 하나회 대부 고 윤필용 장군의 빈소에는 30여명의 일행을 이끌고 조문해 여전한 세(勢)를 과시했다. 성공한 쿠데타는 무죄라는 말도 있지만 정치군인 전두환은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도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아직 활개를 치고 다니니 과연 ‘정의’가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듯하다. 과거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하는 국민은 미래로 나가지 못하고 오욕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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