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기린, 고혈압 연구모델 기사의 사진

수의사나 동물학자만 야생동물을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나 생리학자들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 할 방법을 찾기 위해 동물을 연구해 왔다. 새들의 비행을 통해 비행기의 원리를 발견해 내듯 생리학자 크누트슈미트 닐센은 낙타가 사막에서 물 없이 오래 버틸 수 있는 비밀을 알아냈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인 기린의 혈압 관리 노하우는 사람의 고혈압을 연구하던 하버드 의대 생리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키가 6m까지 자라는 기린이 2m70㎝ 높이의 심장에서 6m 높이의 머리끝까지 혈액을 보내기 위해서는 심장에서 엄청난 힘으로 펌프질을 해야 한다. 그래서 기린의 정상 혈압은 270/180(㎜hg)이다.

사람의 정상혈압이 120/80이고, 140/90을 넘기면 고혈압환자로 판정 받아 평생 동안 매일 고혈압 약을 먹어야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기린의 혈압은 매우 높은 편이다. 게다가 기린의 심장은 1분에 170번이나 뛴다. 사람보다 2배 이상 뛰는 셈이다.

이 일을 감당해 내야 하는 기린의 심장은 길이가 60㎝이고 무게가 11㎏까지 나갈 정도로 크지만 몸집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그리 크다고만은 할 수 없다. 대신 두껍고 강력한 심장근육으로 되어 있다. 특히, 온몸으로 피를 보내야 하는 좌심실벽은 자동차 타이어보다 더 두껍다.

기린이 머리끝까지 혈액을 올려 보낼 정도의 강력한 심장을 가졌다 하더라도 남은 문제가 있다. 기린이 항상 머리를 치켜들고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을 마실 때나 수컷들끼리 힘을 겨룰 때 서로 목을 휘둘러 상대를 치는 목치기를 보면 순식간에 머리가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기린이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심장보다 더 낮은 위치에 머리가 있게 되면 센 압력으로 심장에서 나온 혈액은 중력까지 더해져 강한 압력으로 머리로 돌진하게 될 테고, 그 힘으로 뇌혈관을 치게 되면 즉시 죽거나, 운이 좋아도 의식불명이 되는 사태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경원 시절부터 되짚어 봐도 물을 마시다 죽은 기린은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기린의 양 턱밑에는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독특한 구조물이 있어서 뇌로 가는 혈액의 압력을 조절해주고, 경정맥과 경동맥 사이에는 우회로가 있어서 경동맥의 압력이 세지면 뇌로 가는 혈액의 일부를 경정맥으로 직접 흐르게 해서 뇌혈관 압력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기린처럼 동물들의 정교한 생명체계를 안다는 것은 동물 세상에 대한 우리의 눈을 뜨게 해줄 뿐 아니라 즐겁고 경이로운 경험이기도 하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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