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퇴임 福은 받은 셈인가 기사의 사진

정운찬 국무총리가 마침내 사퇴했다. ‘마침내’라고 하는 것은 기정사실화한 후 결행하기까지의 기간이 많이 길었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크게 패한 직후 대통령에게 사의 표명을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서도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막연히 짐작컨대 아마 이명박 대통령이 선뜻 사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업어다 난장 맞힌 결과가 된 측면이 없지 않으니까.

정 총리가 그래도 복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듯 7·28 재·보선에서는 한나라당이 대승했다. 그 덕에 떠나는 사람(정 총리), 보내는 사람(이 대통령) 함께 어깨가 가벼워졌다. 세종시 수정안을 관철시키지 못해 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한나라당이 마지막 체면은 세워준 셈인가. 정치란 참…. 어쨌든 정 총리로서는 ‘명예롭게’까지는 모르겠지만 어깨를 펴고 이임할 수 있게는 됐다.

총리의 실패는 대통령의 책임

지난 2007년 봄 그가 대통령 선거 출마 포기를 선언했을 때 다행스럽다는 칼럼을 쓴 기억이 난다. “대통령이라는 지위가 대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학자의 자부심을 꺾을 정도는 못 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터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정 전 총장의 깔끔한 정리는 상당히 위안이 되었을 법하다.”

그 2년 반쯤 후에 국무총리로 다시 정치의 장에 들어서는 그를 보면서 다소 의아한 느낌을 가졌다. “총리 자리 자체가 좋아서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아주 놓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뜻인가.”

그는 청문회 때부터 세종시 수정 소신을 피력했다. 야당 의원들의 집요한 압박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렵사리 총리 인준을 받은 후 그는 곧바로 세종시 계획 수정 및 충청 주민 설득 작업에 나섰다. 만약 이 일이 잘 풀렸더라면 그는 당당히 차기 주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정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 및 강화를 위해 없던 소신을 새로 세운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계획 수정은 좌절됐지만 국민 전체의 뜻으로 보기는 무리다. 국민투표에라도 부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다. 여전히 이 대통령과 정 총리의 패배는 전략과 전투력의 열세 탓이었다는 생각이다.

남 믿고 정치할 생각 말아야

그 점에서 책임의 대부분은 이 대통령의 몫이라고 본다. 애초에 계획 수정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더라면 그것을 관철시킬 전략을 면밀히 세웠어야 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정 총리를 기용해서 그에게 세종시 수정작업의 지휘봉을 맡긴 것으로 할 바를 다한 양했다. 그리고 정 총리는 충청 주민을 달래기에만 매달리는 인상을 줬다. 국무총리에게는 국회와 정당을 설득하고 이들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고 정당들 사이의 이해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도 권위도 없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가 이 점을 간과한 것인지 아니면 수정론자들과 원안론자들 양측의 비위를 다 맞추려는 계산된 실패였는지 시중에 떠도는 말처럼 4대강 사업을 위한 사석(捨石)이었는지,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어느 쪽이든 정 총리의 좌절이 이 대통령의 실패임은 분명하다.

정 총리가 적어도 현재로서는 후 내년 대선에 도전할 동력을 아주 많이 잃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이미지의 심각한 훼손은 면했다. 앞으로 관리하기에 따라 세종시 좌절이 전화위복의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원안론자들의 비위를 맞추는 게 아니라 수정론의 정당성 경제성 효율성을 입증해 낼 때, 선견지명을 가진 초지일관의 리더로 자리매김될 것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란다면 본업회귀가 그중 낫다. 아무래도 정 총리는 프로 정치인들의 ‘노회함’을 체질화하기 어려울 듯하다. 고지식해서 융통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꼭 정치를 하고 싶다면 맨 먼저 갖춰야 할 것이 조직을 만들고 거느리고 이끌 수 있는 능력이다. 남이 만들어 놓은 바탕 위에서는 리더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가 없다. 진두에 설 자신이 없으면 포기하는 게 옳다.

기실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학자의 모습은 정치인보다 더 클 수 있습니다.”

이진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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