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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임한창]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

[삶의 향기-임한창]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 기사의 사진

덥다. 세상이 온통 거대한 용광로 같다. 폭염에 습기가 더해져 불쾌지수가 치솟는다. 서울 여의도는 춥고 더운 것이 분명한 섬이다. 겨울이면 한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살을 도려낼듯 매섭다. 여름이면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덥혀진 더운 바람에 숨이 막힌다. 한때는 모래벌판이던 여의도가 지금은 울창한 숲과 작은 연못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공원으로 변했다.

기자에게 여의도는 ‘약속의 땅’이다. 인생의 분수령을 만들어준 ‘가나안 땅’이다. 뒤엉킨 삶의 자락들이 항상 이곳에서 매듭지어졌다. 1974년 8월 13일. 고등학교 2학년이던 소년이 처음 여의도를 찾았다. 그것은 순전히 목사님의 권유 때문이었다. 여의도에서 열린 ‘엑스플로 74’라는 집회에 고등부 학생들이 참가한 것이다.

그때도 참 더웠다. 모래벌판에 쳐놓은 텐트 위로 폭염이 표창처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아, 사람이 태양광선에 찔려 죽을 수도 있겠구나. 기자는 그때 비로소 더위의 위력을 실감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처럼 많은 땀을 흘려본 적은 없다. 여의도에는 나무 그늘도 없었다. 뙤약볕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의도에는 젖과 꿀이 없다

집회 둘째 날은 폭우가 쏟아졌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일행은 어느 초등학교로 피신했다. 그날부터 우리는 영락없는 피란민이었다. 아침이면 학교 운동장에 밥 차가 도착했다. 사람들은 커다란 통에 보리밥을 퍼 담아 분배했다. 반찬은 단 한 가지. 길쭉한 단무지 한 조각. ‘걸인의 밥상’을 앞에 놓고 모두 손을 모았다. 장엄한 감사의 기도였다. 점심은 ‘콘티 빵’ 하나. 그 달콤한 팥빵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여의도는 고난의 땅이었다. 굶주림과 더위와 갈증의 광야였다. 보리밥이 만나였고, 마른 빵이 메추라기였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찢으며 회개했다. 눈물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서원했다. 기자는 한국대학생선교회 김준곤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김 목사님을 만난 것은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다.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예수 한국’ ‘성령 폭발’ 등 잠언처럼 선포된 말씀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요동쳤다.

여의도에는 34만여명이 모였다. 당시 기독교인은 300만명이었다. 교인의 10% 이상이 여의도에 모인 셈이다. 그 장엄한 기도의 오케스트라는 민족 복음화로 연결됐다. 그 집회가 있은 후부터 한국교회는 폭발적으로 부흥했다. 교인 수가 10년 만에 두 배로 늘었고, 지금은 1200만명에 이른다.

한국교회는 고난과 눈물의 기도를 먹고 성장했다. 3·1운동 당시 기독교인은 국민의 1%인 20만명이었다. 그런데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기독교인은 민족의 아픔에 그 누구보다 예민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었다.

100만명이 복음의 피리 분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어떠한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다.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다. 너무도 냉담하다. 이제 교회가 다시 피리를 불어야 한다. 세속의 탁류에 휩쓸린 백성들을 위해 복음의 피리, 구원의 피리를 불어야 한다. 그들이 춤추게 해주어야 한다.

8월 15일. ‘한국교회 8·15 대성회’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과 국내외 14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다. 100만명이 모이는 집회다. 기도의 피리소리에 모두가 춤추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기도하는 백성에게는 항상 희망이 있으니까.

임한창종교국장 hc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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