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철 (8) ‘한 사람이 한 평 짓기’ 대학 육성 운동

[역경의 열매] 김해철 (8) ‘한 사람이 한 평 짓기’ 대학 육성 운동 기사의 사진

나는 한국루터교선교부에서 최초 루터교 헌법을 제정하고 소집된 제1차 정기총회(1971년 2월)에서 서기에 임명됐고 15년을 일했다. 이후 부총회장 8년을 거쳐 1993년 10월 제23차 정기총회에서 지원상 목사님에 이어 제2대 총회장에 선임됐다.

이듬해 10월 왕십리교회에서 열린 제24차 정기총회에서 ‘루터란 비전 2000’을 선언했다. 루터란의 교단장으로서 새로운 세기의 지평을 열자는 의미에서 세 가지 비전을 선포했다.

“첫째, 모든 지교회는 자주 자립하는 교회가 되어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변모되어야 한다. 둘째, 한 사람 한 평 짓기 운동에 동참해 루터신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키자. 셋째, 중국과 북한선교의 기틀을 준비하자.”

루터신학교의 교수 겸 발전후원회 회장도 겸하게 된 나는 루터신학교를 99년까지 대학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 두 번째 비전인 ‘한 사람이 한 평(300만원) 짓기 운동’에 적극 나섰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분들이 있다.

최일평 집사님. 부모님이 자신의 이름을 지을 때 ‘최소한 한 평’이란 뜻에서 이렇게 지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이 이때를 위함이라며 과감히 결단했다. 그리고 최소한 한 평, 그 이름대로 씨앗을 심었다.

한번은 이무열 목사님이 핸섬한 젊은 청년을 소개했다. 그 젊은이는 미국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하고 국제 변호사로 일하는 이상헌 박사였다. 그에게 루터교회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를 물었다.

“저의 부모님은 의사로서 오래 전에 도미하셨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가톨릭교회에 나가고, 아버지는 미국의 루터교회를 나가는데, 한국에 가면 꼭 루터교 총회를 찾아가 인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박사는 이후에도 몇 차례 본부를 찾아와 나와 교제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 평 짓기 운동을 전해 들었고, 그 청년은 헌금도 했다. 이 박사가 출국할 때 선물로 ‘주를 찬양하세’란 설교집을 전달했다. 그리고 1년쯤 지났을까.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준 설교집을 모두 읽었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더 큰 기적이 이내 일어났다고 고백했다.

“건강하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어요. 어머니는 큰 슬픔에 성당에도 안 나가시고 아예 문 밖 출입을 안 하셨지요. 그런 어머니에게 설교집을 전해드리며 꼭 읽어보라 당부했습니다. 지금 어머니는 새 힘을 얻으셨을 뿐 아니라 아버지가 다니시던 루터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피자 하면 ‘피자헛’이란 상호가 떠오른다. 루터대 명예총장인 도로우 박사님이 한 외국인을 내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피자헛 국제본부 이사인 빌 레이스하드씨였다. 한국에 피자헛 오픈 기념으로 좋은 일을 해보자며 한국 지사장과 함께 당시 3000만원(10평)을 루터신학교에 기증했다. 레이스하드 이사는 이후에도 후원금을 보내왔다. 총회장직에서 물러나고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으니 참으로 감격스런 대답이 나왔다.

“피자헛을 사임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피자들을 모아 굶주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돕고 있어요.” 푸드뱅크 사업가로 변신한 그의 끝없는 열정을 나도 닮고 싶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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