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손영옥] 노인 홀대, 貧國 경시? 기사의 사진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2003년 곤욕을 치렀다. 새 대기오염 기준을 제안하며 내놓은 보고서에서 공기를 정화해 살릴 수 있는 사람의 목숨 값을 매겼는데, 나이 따라 차등을 둔 게 문제였다.

국민 1인의 목숨 가치를 370만 달러(약 43억원)로 환산했지만, 70세가 넘은 노인은 230만 달러로 낮춰 제시했던 것. 젊은 사람은 더 오래 살 테니 앞으로 누릴 행복도 더 클 것이라는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의 결과다. 노인들은 분개했다. 노인보다 젊은 사람의 목숨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기다니. ‘노인 할인’에 대한 노인단체의 거센 항의에 놀란 환경보호국은 결국 보고서 내용을 철회해야 했다.(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68쪽. 김영사)

신문사 편집국 국제부도 사람의 목숨 값을 재는 일을 많이 한다. 지구촌 200여개 나라에서 숨 가쁘게 이어지는 사건·사고, 테러와 분규, 자연재앙은 민주화가 덜 되고 경제발전이 더딘 개발도상국과 빈(貧)국에서 수시로 발생한다. 피해 규모도 국내와는 비할 바 없이 크다. 한정된 지면에 그날의 지구촌 기사를 소화해야 하는 기자들로선 각국의 무수한 죽음들에 대해 기사가치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연쇄 폭탄테러로 40여명이 숨졌네요.” “그거, 얘기 안 돼. 한 달 전엔 중앙은행이 피습돼 수십 명 죽었고, 지난해 말엔 정부 청사가 공격당해 150여명이 목숨을 잃었어.” 시시각각 타전되는 외신을 체크하는 국제부에서 수시로 넘나드는 대화의 하나다.

문득 숫자에 매몰돼 비극의 개별성에 무디어지는 ‘몹쓸’ 직업병에 걸린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게 된다.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수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에 불과하다.’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얘기한 것으로 알려진 문장이다. 지구촌 뉴스를 통째 다루는 국제부 기자의 둔감증이 그 끔찍한 문장과 다를 게 뭔가.

씁쓸한 건 또 있다.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테러나 선진국 국민의 죽음은 보다 크게 취급되는 현실이다. 지난해 세밑 미 중앙정보국(CIA) 아프가니스탄 지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의 희생자는 CIA요원과 용역 직원을 포함해 8명이었다. 워낙 이례적이어서 언론은 대문짝만하게 다뤘다. 아프간 전쟁을 주도하는 미국 정보전 심장부가 뚫린 것이라서 뉴스가치가 충분했다.

이런 주장은 ‘당신들의 논리’일 수 있다. ‘노인할인’에 격앙했던 당사자들의 심정을 생각해보라.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개도국 사건·사고의 뉴스가치가 절하되는 건 논리상 타당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가슴을 할퀴는 ‘개도국 할인’ ‘빈국 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허나, 현실은 현실이다. 취사선택은 불가피하다. ‘독일의 찰리 채플린’ 카를 발렌틴은 “신문 한 부에 담을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일들만 세상에 일어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상(理想)은 품어야 한다.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들먹이지 않아도 국가간 빈부 격차를 줄이고, 구체적인 개인의 삶까지 보듬어가는 공동선(共同善) 추구는 인간사회의 보편적인 소망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스탈린의 언설을 뒤집는다. 무수한 죽음은 통계의 누적일 뿐이지만, 한 명의 죽음은 비극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아프리카 아시아 중남미의 빈국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테러와 분규가 낳은 개인사에, 그 참극을 딛고 일어서려는 개인과 정부의 노력에 주목하는 건 그런 이유다.

테러에 동원되는 예멘 소년병의 슬픔, 친미 아버지를 반미 아들이 쏴 죽인 이라크 가족 이야기, 르완다에 희망을 주는 컴퓨터 보급운동…. 신문의 국제면은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보여주는 창에 그치지 않는다. 지구촌 마을에서 분열과 빈곤을 걷어내고 인류 공동의 번영과 평화를 앞당기기를 소망하며 부르는 ‘희망가’이기도 하다.

손영옥 국제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