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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기 칼럼] 세계문화유산 선정릉의 안과 밖

[김성기 칼럼] 세계문화유산 선정릉의 안과 밖 기사의 사진

“널리 자랑하기에 앞서 주변까지 아우르는 보호대책 시행하고 여론 환기해야”

서울 강남 도심에 위치한 선정릉은 삼성 대치 역삼동 등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몰려 있는데다 유동인구가 많은 테헤란로에 가까워 시민의 발길이 잦다.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 중종의 능이 잘 가꾸어져 있고 숲이 울창해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지난해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단체 관광객이 부쩍 늘어 입구 부근에 주차된 버스를 쉽게 볼 수 있다.

요즘처럼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는 인근 주민들이 아침 산책하기에도 그만인 곳이다. 입장료(어른 1회 1000원, 1개월 상시입장권 1만원)를 내고 능역에 들어서면 깨끗하게 정돈된 길과 잔디밭이 나오고 숲 속에는 완만한 경사면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몇 갈래 나 있다. 토사가 빗물에 쓸려가지 않도록 보강재로 일일이 손질한 길, 시원하게 뻗은 자연림을 보면 관리소가 얼마나 세심하게 이곳을 돌보아 왔는지 짐작이 간다. 입장객들도 휴지 하나 허투루 버리지 않고 금연 등 관람수칙을 잘 지켜 일반 공원과는 분위기가 확 다르다.

언뜻 보아도 철망으로 울타리를 둘러친 선정릉 안에서는 문화재 보호 및 관리가 잘 이뤄지고 시민들의 협조도 기대 이상이다. 최근 울타리 일부 구간을 전통 돌담으로 고치는 공사에 들어가 주위가 좀 어수선한 편이지만 경관 개선을 위한 몸살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울타리 밖의 모습은 딴판이다. 울타리를 따라 능역을 감싸는 외곽 보행로는 중간 중간에 전봇대와 가로등 기둥이 돌출해 있어 시민들이 오가기에 매우 불편하다. 지하철 환풍구가 보행로 일부 구간을 차지해 짜증나게 한다. 주택가 쪽에는 폭 1m 남짓 좁은 보행로 구간이 이어지는데 헌옷 수집함까지 번거롭게 한다. 강남등기소 쪽에는 막걸리병 상자가 보행로를 차지하고 철망에 낡은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묶여 있다.

선정릉 주변에는 유흥업소가 적지 않아 밤이 되면 주위가 소란스럽고 가끔 만취한 행인들이 보기에 민망한 장면을 연출한다. 지난 주말 아침 보행로를 차지한 환풍구 옆을 지나는데 간밤 취객이 쏟아낸 것으로 추측되는 오물이 냄새를 풍겼다. 그 앞으로 일본인으로 보이는 단체 관광객들이 고개를 돌리며 지나갔다. 며칠이 지나도록 오물은 그대로였다. 오물이 냄새를 풍기고 전봇대가 시선을 가로막는 보행로를 통과하면서 관광객들은 무슨 느낌을 받았을까.

선정릉 경계선 안쪽의 정돈된 능역과 여기에 대비되는 바깥 쪽 모습은 우리 문화재보호 의식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세계문화유산이라고 외국에 널리 자랑해 인정받고 싶지만 시민의식은 아직 의욕에 미치지 못하고 문화재 정책과 일반 행정이 겉도는 탓이다. 제한된 공간 안에선 주어진 재원으로 관련 업무가 세심하게 추진되지만 관할을 벗어나면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업무 조정도 이뤄지지 않는 사각지대가 나타난다. 울타리 밖 보행로는 관리소 소관이 아니어서 신경을 안 쓰고 보행로 정비와 관리를 맡은 지방자치단체는 행정력이 부족하다고 방치한 소산일 게다. 여기에 공중도덕을 잊은 취객들이 가끔 사고를 치고.

문화재 보호가 주변 개발을 강력히 제한하고 외곽 주택과 건물을 정비하는 거창한 일만은 아니다. 물론 국민 동의가 있고 재정 여건이 허락한다면 대대적인 역사(役事)도 가능하겠지만 우선 문화재 보호를 위한 시민의식과 공감대를 확산해 여론을 환기하고 관할부터 따져 책임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위치한 지역이라면 자치단체가 면피용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재보호 취지에 걸맞게 주변 지역까지 행정 지원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 역시 관할구역은 물론 접근로와 외곽시설에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 자치단체와의 실무 협조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조정에 나서야 한다.

문화재는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정책과 실무 행정이 함께 돌아가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다. 내세우고 싶은 부분만 광내고 주변은 냄새가 나도록 방치하는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김성기 편집인 kimsong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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