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해철 (9) “100년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키우라”

[역경의 열매] 김해철 (9) “100년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키우라” 기사의 사진

1996년 여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동역교회 본부를 찾아갔다. 총회장과 선교부장을 만나 루터신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는 것은 한국루터교회의 최우선 과제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시설 확충을 위해 한평 짓기 운동을 전개했고, 이를 통해 100만 달러를 모금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100만 달러를 빌려준다면 한국교회가 원리금을 갚겠다”고 부탁했다.

내 말을 귀담아 듣던 선교부장이 웃으며 말했다. “세계 30개국을 대상으로 선교를 해왔지만 한국처럼 책임을 다하고 원리금을 갚는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달라는 곳은 없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본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100만 달러를 보조한다. 그 가운데 70만 달러는 후원금이다. 2000년부터 30만 달러에 대한 원리금만 갚으면 된다.” 마침내 루터신학교는 1997년 12월 루터신학대로 승격했고, 총회 본부와 대학 측이 30만 달러에 대한 원리금을 10년간 모두 갚았다. 이제 루터대는 제2의 중흥기를 맞기 위해 교육부로부터 증원 및 증과의 허락을 받아 다시 한번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당년에 거두려거든 곡초를 심고, 10년에 거두려거든 과수를 심고, 100년에 거두려거든 사람을 키우라.”

목회자이자 현재 루터대 총장으로 일평생 주의 일꾼으로 살면서 이 말을 교훈으로 삼았다. 그래서 장학사업에도 앞장섰다. 솔직히 나도 고교 시절엔 캐나다연합교회가 주는 장학금으로, 신학교 시절엔 교회 봉사를 하고 받은 장학금으로 공부했다. 루터교신학원과 미국의 자매교회가 주는 장학금으로 유학생활도 마칠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장학 혜택에 대한 사랑의 부채의식이 인재 양성이라는 비전으로 이어진 셈이다.

부산제일교회를 개척했을 때 한 집사님이 셔츠 상자를 보자기로 싸서 가져왔다. 그것을 풀어보니 1000원짜리가 가득 들어 있었다. 300만원을 헌금한 것이다. “친분 있는 부인들과 ‘다이아몬드 목걸이 계’를 부었는데, 이번에 제가 탔습니다. 그런데 일전에 목사님께서 ‘겉 단장보다 속 단장하기에 힘쓰라’고 설교하셨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그 돈을 고스란히 가져왔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동기에 반했다. 엄마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키우는 데 사용키로 하고 150만원은 유치원 시설비로, 나머지는 부산제일교회 밀알장학기금으로 내놓았다.

또 1979년부터 14년 9개월 동안 서울 중앙교회 목사로 시무했을 때 일이다. 교회 옆에서 어렵게 홀로 사는 할머니가 나를 찾아왔다. “목사님, 저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목사님과 사모님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어요. 목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100만원을 내놓는 게 아닌가. 80세를 넘긴 이 할머니는 자녀도 없었다. 쪽방에서 나오는 월세로 근근이 살고 있었다. 계속 사양하는 것도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일단 받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다.

“이 돈은 과부의 두 렙돈만큼 소중하니 여기에 돈을 더 보태 장학기금을 만들어 젊은이들을 돕자. 그들로 하여금 할머니의 정신적 손녀들이 되어드리게 하자.” 이렇게 해서 중앙교회의 루터장학기금이 탄생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은퇴 후에도 일정액의 곤암장학금을 내놓고 있다.

늘그막에 목회 꿈나무들을 키우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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