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선의 동물 이야기] 홍학은 우아한 발레리나 기사의 사진

새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의 부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새는 부리로 집을 짓기도, 먹이를 사냥하기도 하며, 때로는 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부리만 봐도 어떻게 사는 새인지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검은색에 길게 구부러진 홍학의 부리는 대번에 홍학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오목한 아랫부리에 다른 새에서는 볼 수 없는 머리빗처럼 생긴 여과장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홍학은 이 여과장치를 이용해 물속에 있는 작은 새우나 플랑크톤 같은 먹이를 걸러내 먹는다.

백로나 해오라기들이 가만히 있다가 한번에 물고기를 낚아채는 것에 비하면 지루하고 고단한 일이지만 실패할 확률도 없고 위험하지도 않으니 겁 많고 소심한 홍학에게는 딱 어울리는 방법임에 틀림없다.

홍학 자신도 이 방법이 내심 만족스러운 듯 먹이를 충분히 주고 있는 동물원에서 조차 아무것도 없는 물속에 부리를 담그고 두 발을 찰방거리며 쉼 없이 먹이를 찾고 다닌다. 아마도 동물원 먹이로 배는 채울 수 있어도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느끼는 만족감은 줄 수 없는 모양이다.

홍학이 동물원 먹이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홍학을 홍학답게 해주는 붉은 색소가 그것이다. 분홍색으로 감싸인 몸을 한쪽 다리로 발레리나처럼 균형을 잡고 물속에 서 있는 홍학은 아름답지만 하얀 깃털로 덮인 홍학을 더 이상 홍학이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니, 동물원마다 홍학의 깃털을 붉고 선명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마다 봄이 되어 새 깃털이 날 때가 되면 천연색소 물질이 특수 처방된 사료를 먹이며 온갖 정성을 들이고, 그 덕에 분홍색으로 꽃단장한 홍학들은 사자, 호랑이 같은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언제나 동물원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동물원에서 홍학이 인기를 얻는 비결 중에는 수십 마리가 조련사의 손짓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방향을 바꾸고 행진을 하는 홍학쇼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홍학은 조련을 받아 본 적이 없고, 사육사도 홍학을 훈련시켜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쇼가 가능한 이유는 사육사가 홍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장을 따라 무리 전체가 움직이는 홍학의 습성을 이용해 사육사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손을 이리 저리 움직이며 대장 홍학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여기에 음악을 더해 쇼를 만들어낸다. 여름 동안에는 야간에도 홍학쇼를 하니 더위도 잊을 겸 동물원 밤 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서울동물원 동물운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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