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김의구] 박근혜와 김무성 기사의 사진

2004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두 번째 당권을 잡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의원들과 저녁모임을 갖는 자리였다. 3선의 김무성 의원이 박 대표 옆으로 다가갔다. “대표님이 대권의 꿈을 갖고 계신다면 폭탄주를 만들어 드시고 다른 의원들에게도 쭉 돌리십시오.” 웬만해선 폭탄주를 마시지 않는 박 대표는 한참 생각하다 제의를 거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 의원은 후일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박 대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좌우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는 점을 조언한 것”이라고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박 대표는 3개월 전 4·15 총선에서 선전하면서 ‘한나라당의 잔다르크’로 떠올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과 ‘차떼기’라 불리는 대선 자금 모금 스캔들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린 한나라당을 떠맡은 박 대표는 여의도 공터에 ‘천막 당사’를 마련했다. 거대 여당 견제론을 펴며 선거전을 지휘해 100석을 건지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21석을 확보했다. 하지만 자신의 대권 행보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박 대표가 총선 이후 천막당사를 정리하고 염창동 당사로 옮겨갈 때 김 의원은 큰 역할을 했다. 염창동 건물은 김 의원의 형인 김창성 전 경총 회장이 실소유주였다. 그해 9월 추석 즈음 김 의원은 기자들과의 저녁자리에 포도주 몇 병을 갖고 나왔다. 박 대표의 이름과 직함을 새겨 넣어 특별제작한 것이었다. 김 의원은 당시 박 대표가 어려운 경제에 추석 선물을 하지 말라고 당에 지시를 내리자 포도주를 돌리려던 뜻을 꺾었다.

김 의원은 이듬해 1월 사무총장으로 임명돼 당 살림살이를 맡았다. 박 대표로부터 임명장을 받으면서 그는 “대권에도 광역단체장에도 생각이 없다”며 “건강한 보수가 집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친박계의 좌장’으로 부상한 김 원내대표가 최근 박 전 대표 자질론을 언급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국가지도자로서의 여러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지만 사고의 유연성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는 요지다.

이 발언을 놓고 여러 갈래 해석이 나오고 있다. 김 원내대표가 여당 2인자 자리에 오른 여세를 몰아 본격적인 자신의 정치 행보에 나섰다는 분석이 제기되는가 하면, 박 전 대표의 진노와 친박계의 비난을 무릅쓰고 충언을 했다는 분석도 있다. 발언 내용만 보면 김 원내대표가 줄곧 주장해온 친이-친박계의 단합, 국정협조를 통한 박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 간의 화해를 다시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것들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음 번 당내 대선 경선에서 박 전 대표가 또다시 당원들의 문턱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반면 발언이 인신공격에 가까워 예전의 조언 수위를 넘어섰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박 전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출발점은 많이 다르다. 박 전 대표는 청와대에서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권력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 김 원내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오랜 야당생활을 해 정치권력과 민심의 향배에 민감하다. 박 전 대표의 리더십을 지향점 분명한 서릿발 같다고 한다면 김 원내대표의 특장은 유연성과 포용력이다. 그래서인지 여당 비주류의 길을 걷는 걸음이 여러 차례 엇갈렸다.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리면 박 전 대표는 여전히 ‘이 대통령이 채무의식을 느낄 수 없는 먼 곳’에 있다. 김 원내대표는 친이와 친박의 중간쯤에 서 있다.

김 원내대표가 자신만의 정치행로에 들어선 것인지 박 전 대표의 길을 닦기 위해 매를 자초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해질 것이다. 가장 중대한 갈림길은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부터 숱한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던 여당 대선후보 결정 과정에서 김 원내대표가 박 전 대표를 위해 움직일지, 아니면 다른 길을 걸을지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의구 정치부장 e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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