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 등단 50년… ‘소설 사도 바울’로 새 출발

[역경의 열매] 유현종 (1) 등단 50년… ‘소설 사도 바울’로 새 출발 기사의 사진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9∼13)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블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딤후 4:21)

나는 요즘 ‘소설 사도 바울’을 집필 중이다. 이 작업은 너무도 방대하고 심오해서 벌써 3년째 바울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족적을 따라 추적해 보기도 하지만 그 깊이와 넓이가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아 익사 직전처럼 항상 허우적거린다.

친구들을 보면 일부러 나이를 잊고 살려고 한다. 나이를 먹는 게 싫고 죽음이 다가오는 게 무서운 것이다. 주변에서, 혹은 제자들이 “선생님, 올해로 등단 50주년이 되었는데 뭔가 기념문집은 내셔야지요”라고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19세에 작가가 되어 그저 5년쯤 지나갔으리라 생각하며 창작생활을 해오고 있었는데 50년이라니 조금은 충격이었다.

50년을 5년으로 우기며 살아온 데는 바로 나이를 잊고 살겠다는 ‘일부러 건망증’ 친구들과 맥을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50년 동안 작가생활을 했다면서 남겨놓은 게 뭐가 있느냐? 문학사에 남을 명작을 남겼느냐, 아니면 내가 기뻐 받을 만한 믿음의 열매라도 남긴 게 있느냐? 도대체 해놓은 게 뭐가 있는지 한번 내놔보란 말이다.”

나중에 죽고 나서 나이만 먹고 뭐 했느냐고 하나님이 그렇게 준열하게 꾸짖을 것 같아 겁이 나서 50년 어쩌고 감히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남들은 나에게 ‘들불’ ‘연개소문’ ‘대조영’ ‘임꺽정’ 등 수많은 작품을 써서 작가로서도 성공을 거두었고 명예도 얻었으며 재산도 얻었으며 인기 작가로 남부러움 없이 잘 살아왔으니 부럽다고 말들을 해오고 있다.

물론 그걸 부인하는 건 아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중천에 떠오르는 보름달이 아름답다고만 할 수는 없다. 보이는 달의 전면만 아름다운 거지 어두운 달의 숨겨진 뒷면은 누구도 모른다.

내가 50년 작가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5년이라 속으로 우기며 사는 건 정말로 내세울 만한 작품이 없다는 자괴심 때문이다. 내가 ‘소설 사도 바울’을 써야 하며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래도 하나님 곁으로 가기 전 그분이 기뻐 받으실 만한 작품 하나는 가지고 가야만 할 것 같아 착수한 것이다.

디모데후서는 죽음을 예견한 사도 바울이 남긴 최후의 서신이었다. 자신의 영적 아들이라는 디모데에게 자기 옷과 책을 가지고 빨리 와 달라고 채근하는 내용이다. 나는 바울 사도가 디모데 대신 나에게 빨리 작품을 써가지고 로마로 오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약력=1940년 전북 전주 출생. 서라벌예대 졸업, 61년 문단 데뷔. 자유문학 신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창작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등 수상. 중앙대 국문과, 우석대 예체능대 겸임교수. 방송위원회 제1심의위원장, (사)한국문학예술진흥회 회장 등 역임. 강남 임마누엘교회 장로, 대표작은 장편 ‘들불’ ‘불만의 도시’ ‘연개소문’ ‘대조영’ ‘임꺽정’ ‘천산북로’ ‘천추태후’ ‘삼별초’ ‘유다행전’ ‘두고 온 헌사’ 등.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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