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차은영] 親서민 vs 反서민 기사의 사진

최근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아마도 ‘친서민’이 아닐까 싶다. 서민의 사전적 의미에는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사람’과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생활을 하는 넉넉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 또는 평균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던 첫 번째 개념이 퇴색하고 사회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경제적 약자를 통칭하는 뜻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서민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이후다.

정치구호적 성격이 강한 친서민의 이름을 단 경제정책들이 자고나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오비이락인지 확실치 않지만 정치일정과 무관하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의 각 부처, 정치인들까지 마치 누가 더 서민의 수호자인지 경쟁하는 분위기다. 이견을 제시할 경우 반서민으로 매도당해 곤욕을 치렀다는 일화도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서민을 위하는 정책이면 시장원리를 무시해도, 관치가 난무해도 된다는 식이어서 정치논리가 지나치게 경제에 개입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실 친서민과 반서민 정책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적 약자를 보호한다는 좋은 뜻으로 정부가 실시한 정책이 오히려 그 약자를 더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결과를 가져온 정책의 예를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를 촉발시킨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의 출발점도 프라임 시장에서 거절당한 서민층에게 주택 소유의 기회를 더 주기 위한 훌륭한 뜻이었다.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의 주택소유율은 줄어들고 경제 침체에 따른 고용 감소라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프라임 시장에서 거절당한 데는 이유가 있는데 시장원리는 무시한 채 선심성 정치논리가 앞섰기 때문이다.

저소득층 금융 지원과 중소기업 보호·육성으로 요약되는 친서민 정책도 반서민적 요소가 없는지 살펴볼 일이다.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미소금융과 학자금상환 제도의 효과가 크지 않자 정부는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학자금 대출금리를 낮추고 햇살론을 내놓았다.

인구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대출금리를 너무 낮추면 대출액이 많아져 잠재적 부실만 늘게 된다. 미소금융의 대출 조건이 대출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까다롭지만 공급자 입장에서 보면 아무에게나 대출해주었다가 상환이 되지 않으면 손실에 따른 책임은 고스란히 금융기관의 몫이므로 조건을 낮추기가 쉽지 않다. 불 보듯 뻔한 도덕적 해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카드대란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보호 정책은 과거 어느 정부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중소기업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일방적인 보호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 경쟁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기업의 오랜 납품단가 압력과 불공정 거래 관행 등은 반드시 시정돼야 하지만 동시에 중소기업의 구조조정이 병행됨으로써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의 생존전략이다. 지금까지 퍼부은 농업지원책의 결과는 빚이 늘어난 농민과 유사농민 양산이라는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경제적 취약계층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가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가 상대적 약자에 대해 더 배려하고 같이 잘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도 옳다. 그렇지만 급조된 정책 때문에 국정 운용의 우선순위가 표류하고, 대증적 임시방편에 의지하는 듯한 행보는 정책의 유효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의 선명성에도 악영향을 미쳐 많은 경제주체들은 정책의 진정성을 믿기보다 이 상황만 버텨내 보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부는 예상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의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시장원리의 틀 내에서 경제적 취약계층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실질적 정책 대안을 고민할 때다.

차은영 이화여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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