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2) 부친 위독 전보 받고도 임종 못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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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의 감독으로 있었다. 그는 바울의 서신을 인편으로 받고 영적인 아버지이며 스승인 바울을 만나러 속히 로마 감옥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투옥된 감옥은 이름만 감옥이지 로마 교외에 단독 가옥 한 채를 주고 병사 한 명에게 감시하도록 하는 연금생활이었다.



의사요 시인이며 화가였던 누가를 비롯하여 자주 염료장사였던 루디아, 뵈뵈 등 여인들은 옥바라지를 위해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다. 따라서 이 감옥은 바울 사도의 로마 선교본부였고 소아시아, 헬라 지역 각처에 개척한 교회들의 본부이기도 했다.

2년이 지나자 당국은 석방했다(AD 62년). 바울은 투옥기간 중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 이단의 침투로 교리가 변질되고 질서가 흐트러져 있음을 알고 제자들을 이끌고 순방 목회 지도에 나섰다. 그렇게 2년 동안 각처를 돌아다니며 교회들을 바로 세웠다.

바울이 다시 투옥된 것은 64년이었다. 폭군 네로의 로마 대화재 이후 대대적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번에 투옥된 감옥은 춥고 더러운 지하실이었다. 그는 그 감방에서 3년을 지냈다. 그 당시 바울이 얼마나 외롭게 되었는지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자세히 나와 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사도 바울은 다메섹 회심 이후 30여년 동안 전도활동을 하며 교회를 개척했는데 그를 따르는 가장 아끼던 제자는 모두 70명이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앞에 든 제자들은 지하감옥까지 따르며 옆에서 함께 고난을 나누던 사람들이었다.

누가만 옆에 있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참담했을까. 지하실은 차가운 습기가 뼛속까지 스며들고 그 추위를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겨울 외투와 양피지 가죽에 쓴 책자를 가지고 빨리 오라고 급한 서신을 보냈던 것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빨리 오라 했다. 겨울이 되면 먼 곳으로 가는 배는 항해하지 않는다. 디모데는 마가가 있던 구브로(키프러스) 바포에 사람을 급히 보내어 뜻을 전하고 함께 가자 하고 자기는 드로아(트로이)에 가서 스승의 외투와 책을 가져와야 하는데 사사로운 일들이 많아 차일피일 미루는 바람에 마가가 온 뒤에도 열흘 이상 미적거렸다.

이때 디모데는 평생 후회할 실수를 저질렀다. 내일 떠나지, 내일 떠나지 하다가 막상 로마로 떠나려 하자 겨울이 시작되어 떠나는 배가 묶여버렸던 것이다. 해동(解冬)이 되는 봄이 되어야 배가 간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이 겨울이 지난 뒤에야 로마 감옥에 갈 수 있었다. 디모데를 본 간수는 바울이 매일 당신 이름을 부르며 오지 않았느냐고, 왜 안 오느냐며 애타게 기다리다가 한 달 전 끌려 나가 처형당했다고 알려주었다(AD 67년).

나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위독하니 속히 오란 전보를 받고도 미적거리고 늦게 가는 바람에 임종을 하지 못한 뼈아픈 기억이 있다. 디모데는 실기(失機)로 마지막 가는 스승을 보지 못했다. 그 때문에 바울이 어딘가에 써두었던 미공개 서신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꼭 남기고 싶었던 중요한 어록(語錄)을 못 받았을 수도 있었다.

만사에는 다 때가 있는 법. 하나님은 그래서 때를 정해두셨을 것이다. 기름 사러 나갔다가 때를 놓친 처녀들은 하나님이 문을 닫는 바람에 잔치에 참여치 못했다. 그토록 한없이 인자하신 하나님도 때를 놓친 자에게는 냉정함을 보이셨다. 그런데도 나는 돌이켜보면 평생 때를 놓친 실기의 연속인 삶을 산 것 같아 후회막급일 뿐이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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