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2) 난초가 어물전에 간다면 기사의 사진

소동파가 어느 날 난초 그림을 보았다. 난은 가슴 설레도록 아름다웠다. 시심에 겨워 그는 시 한 수를 적었다. ‘춘란은 미인과 같아서/ 캐지 않으면 스스로 바치길 부끄러워하지/ 바람에 건듯 향기를 풍기긴 하지만/ 쑥대가 깊어 보이지 않는다네’.

제 발로 찾아오는 미인은 없다. 향기를 좇아가도 웬걸, 쑥대 삼대가 가로막아 만나기 힘들다. 난초 그리기도 미인의 환심을 사기만큼 어렵다. 난 잎의 시작은 못대가리처럼, 끝은 쥐꼬리처럼, 가운데는 사마귀 배처럼 그린다. 잎이 교차하는 곳은 봉황 눈을 닮아야 하고 잎이 뻗어나갈 때는 세 번 붓 꺾임이 있어야 한다. 이럴지니 그림 속 난향인들 쉽사리 풍기겠는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난초는 홑잎이다. 봉긋하게 솟은 난 잎의 자락이 요염한데, 봉오리가 뱀 대가리마냥 혀를 날름거린다. 매우 고혹적인 병치다. 아래쪽 고개를 쳐든 풀은 지초다. 난초와 지초가 나란히 있으니 이른바 ‘지란지교’다. 벗과 벗의 도타운 사귐은 난초와 지초의 어울림과 같다. 그것도 모자라 대원군은 맨 아래에 공자 말씀을 덧붙인다. ‘착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난초는 미인이자 선인(善人)이다. 예나 오늘이나 남자는 예쁜 여자를 찾는데, 지금 여자는 나쁜 남자를 좋아한단다. 예쁜 여자와 나쁜 남자의 만남을 어찌 일컬을지 모르겠다. 다만 공자의 이어지는 말은 이렇다. ‘나쁜 사람과 지내는 것은 어물전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오래되면 냄새를 못 맡고 비린내에 젖는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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