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곤 칼럼] 깜짝 놀랄 젊은 총리 후보 기사의 사진

“국민이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를 내세워 승리할 것.”



1995년 10월 9일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했다는 말이다. 97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언급이었다. 훗날 김 전 대통령은 이를 부인했지만 정설로 굳어져 전해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했든 안 했든, 인터뷰를 한 신문이 보도했고 국내 언론들이 이를 옮겨 전하기에 바빴다. 거의 임기 반환점에 이르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장악력은 확고했다.

후계자 만들기 시동걸었나?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하고자 하는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대통령이 한 말이었다. 세인들이 ‘바로 그 사람’으로 인식했던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는 만 47세를 두 달쯤 앞둔 나이였다. 아마도 대통령의 정치력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겠지만 그는 출마에 집착했다.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후 신당을 창당하는 무리수를 둬가면서까지 기어이 출마를 강행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절반쯤에 이르러 ‘깜짝 놀랄 젊은 총리’ 카드를 불쑥 내밀었다(김태호 총리 후보는 만 48세에 열흘 모자라는 나이다). 역시 명분은 ‘세대교체’다. 김 전 대통령과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점이 있다. 혼자 앞서가는 스타일이 그것이다. ‘나이가 아니라 사고의 젊음’을 강조한다더니 연막이었던 모양이다.

이 대통령이 의도했건 안 했건 40대 총리 후보 지명은 제18대 대선의 신호탄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통령으로서야 만난을 무릅쓰고 자신의 정책 의지를 구현해줄 소신·패기·돌파력을 갖춘 총리감을 물색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권, 특히 2012 대회전을 준비 중인 정치인들더러 그렇게 믿어 달라고 하면 억지가 되고 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는 것보다는 경쟁 구도를 갖추는 게 당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라 여겨서일까? 그간의 ‘이·박 갈등구조’를 감안하면 아무래도 그런 배려는 아닌 것 같다.

박 전 대표 대항마 양성에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고 보는 게 훨씬 쉬운 추측이겠다. 이재오 의원을, 재선거에서 당선하기 무섭게 특임장관으로 발탁한 까닭인들 다를까.

그게 잘못이랄 것은 없다. 어느 나라 어느 대통령이든 자신의 정치철학, 이념, 정책 목표와 방향을 이어가 줄 후임자를 원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떤 정신, 어떤 이념, 어떤 정책을 물려주고 싶은가 하는 데 있다. 이 대통령의 희망은 무엇일까?

정치기술과 리더십은 다르다

보도되기로 이 대통령은 친 서민 중도실용, 계층 간 상생, 국민 통합 및 대국민 소통을 향후 국정운영 방향으로 잡았다. 여기에 계층 간 이동과 소통의 제고도 덧붙여졌다. 이제까지와 달라진 게 없다. 그런데도 다시 강조하는 것은 여론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맥(脈)이 이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터이다.

계층 간 상생이나 국민 통합과 대국민 소통이야 새삼 강조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국정 책임자 본연의 책무다. 그렇다면 정치철학이라고 할 것은 ‘친 서민 중도실용’인 셈이다. 이 또한 이 대통령이 진작 내걸었던 기치다. 그리고 과거 누구의 표현처럼 ‘재미를 좀 본 것’도 사실이다.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수식어 다 떼어내고 보면 남는 것은 ‘대중적 인기영합’뿐이다. 대중의 기대와 요구에 적극 부응해 가는 의식과 태도를 잘 꾸며 말하면 ‘친 서민 중도실용’이 되지 않을까? 좀 더 유식하게 들릴 말로 하면 ‘대중 프렌들리 정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우파 포퓰리즘’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하더니, 목하 정부·여당이 (좌든 우든) 포퓰리즘 시대에 들어설 모양이다. 국민을 위하고 국민의 뜻을 따른다는 것과 대중에 아부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태도다.

정치 리더십을 포기하고 정치공학, 득표기술에만 매달리면 머지않아 나라가 총체적 위기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정치기술자가 아닌 정치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것이다.

논설고문 경희대 객원교수 jing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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