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4) 운명처럼 채만식 선생 살던 집으로 이사

[역경의 열매] 유현종 (4) 운명처럼 채만식 선생 살던 집으로 이사 기사의 사진

나는 어찌 보면 참 일찍부터 작가가 되는 꿈을 키웠다. 아버지의 직장관계로 중학교 1학년 때 전주에서 이리(현 익산)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다. 이리농림학교 밑 마동이란 동네였는데 이사 간 집은 낡은 초가삼간이었다.

이삿짐이 들어가는데 마당에는 아직도 가져가지 못한 책짐이 남아 있었다. 열권쯤 묶은 책짐은 대여섯개가 되었다.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데 다른 짐은 모두 실어가고 책짐만 남은 것이었다. 40여세 돼 보이는 부인이 주인이었다. 나는 말없이 그 짐을 골목 밖으로 내다주었다.

부인은 고맙다며 소설 읽기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중 한 묶음을 주었다. 그런데 그 묶음에는 성경책 한 권이 끼여 있었는데 그걸 빼가려 했으나 매듭을 풀지 못해 애를 쓰는 내게 부인이 다시 물었다.

“너 예배당 다니냐?”

“예.”

그럼 너 가져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교회 다니며 자기 성경책 들고 다니는 학생을 제일 부러워했는데 내 성경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일곱 권의 소설 묶음은 모두 한 작가의 것이었다.

작가의 이름은 채만식(蔡萬植). 전북 옥구 출신이었던 채 선생은 동경 와세다대학교를 다니고 동아일보 기자를 하다가 ‘탁류(濁流)’ ‘레디메이드 인생’ ‘천하태평춘’ 등을 발표하여 한국 신문학 사상 가장 뚜렷한 풍자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소설가였다.

이분은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6·25가 나던 해, 그 집에서 돌아가셨다. 투병생활을 하면서 약 10년간 그 집에서 사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정말 우연하게 우리가 그 집을 사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책 선물을 하고 간 분은 채 선생의 부인이었던 것이다.

나는 소설 읽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전쟁이 막 끝난 때여서 출판돼 나오는 신간서가 없던 시절이었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은 동네 사랑방 구석에 굴러다니던 방인근의 삼류 연애소설이거나 김래성의 탐정소설이 다였다.

그것도 찢어 담배를 피워서 앞뒤 수십 쪽이 없어진 연애소설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나는 그걸 밤새워 읽고 또 읽으며 기가 막힌 장면이나 표현 등이 있으면 마분지 공책에 깨알처럼 베껴두었다. 사랑방 책이니 놔두어야 했던 것이다.

베낀 공책이 다섯 권이나 되었다. 심심할 때면 그걸 꺼내 공부하는 게 취미였다. 중1 여름방학 때 나는 작문숙제를 해갔는데 ‘몽달이 귀신’이란 단편소설이었다. 장가들지 못해 한을 품고 죽은 어느 청년의 러브 스토리였다.

얼마 후 나는 담임선생님께 불려가 매를 맞았다. 누구 소설을 베껴 왔느냐는 것이었다. 나의 최초의 습작품이라 해도 믿지 않았다. 내용이 성인용 외설작품인 데다 묘사가 너무 선정적이며 자극적이라는 것이었다. 아버지까지 불려와 망신을 당했다. 그 사건으로 나는 예배당 출입 금지령까지 받았다. 예배당 가는 줄 알았더니 연애당 다녀서 애를 버리게 됐다는 게 이유였다.

최초의 내 습작품은 그렇게 참담한 실패작으로 끝났다. 그 후 나는 채 선생의 어려운 순수 예술작품을 읽고 또 읽으며 6개월 만에 새로운 개안(開眼)을 하게 되었다. 문학에는 삼류 연애소설만 있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신비경의 문학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완전히 다른 문학작품을 습작하게 되었고 훗날 나는 작가의 꿈을 이루게 되었다.

나에게 채 선생의 작품과 성경책을 주고 간 채 선생 부인은 최초로 나에게 찾아온 천사였던 셈이다. 그 천사는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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