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6) “새벽기도 응답 없다” 교회와 등져

[역경의 열매] 유현종 (6) “새벽기도 응답 없다” 교회와 등져 기사의 사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나의 배고픔보다는 어린 동생들이 굶주리는 모습은 정말 볼 수가 없었다. 달라진 내 모습과 표정을 본 목사님은 어느 날 이상했던지 날 따로 불렀다.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어려워진 집안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그런 다음 이 어려움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목사님은 내 손을 꼭 쥐더니 하나님께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드리는 수밖에 없다 했다.

“기도하면 틀림없이 응답해주실 게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우선 사십일 새벽기도를 올려봐라.”

그러면서 목사님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눈앞에 닥친 모든 어려움을 풀게 해 달라고 나를 잡고 간절하게 안수기도해 주셨다. 나는 이튿날 새벽부터 어른들 틈에 끼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사십일 기도를 드릴 때 도중에 어쩔 수 없는 일로 하루라도 빼먹으면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는 말에 빠지거나 늦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사십일이 되는 새벽이 되었다. 기도를 다 마쳤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뭔가 달라져 있으리라. 천사가, 아니 고마운 손이 우리 집에 물질적 도움을 주어 배고픔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리라며 집으로 달려갔다.

그때의 실망감이란,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새벽기도 후 간단한 아침식사를 교회에서 먹었지만 굶고 있는 동생들은 들어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난은 아직도 방안과 부엌에 거미줄을 친 채 주저앉아 있었다. 항의하듯 목사님께 말씀드렸더니 응답주실 때까지 기도를 하란 말씀뿐이었다.

한 달을 더 계속했다. 하지만 전혀 응답이 없었다. 마침내 나는 두 번 다시 교회를 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돌아섰다.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거짓말하는 목사님이 싫었던 것이다. 교회를 나가지 않았더니 학생회장이 남녀 학생 두서너 명을 데리고 우리 집을 찾아왔다.

이제 곧 수련회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교회를 자꾸 빼먹으면 되느냐며 회장이 나무라듯 말했다. 회장은 나보다 2년 선배였다. 나는 대뜸 네가 뭔데 찾아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고 화를 냈다. 안 그래도 교회에 대한 반감이 있는데 여학생들까지 돼지우리 같은 우리 집에 끌고 와 난체를 하니 혈기가 치솟았던 것이다.

“다신 오지마. 자식들아, 나 교회 관두었어. 알았니?”

입으로 싸워도 될 걸 찾아온 선배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얼굴이 터져서 돌아간 그들은 두 번 다시 날 찾아오지 않았고 나 역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그때 유행하던 대중가요가 ‘비내리는 고모령’이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예수님의 손을 놓고 돌아 설 때에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 그 노래를 부르며 혼자 흐느껴 울었다. 그쯤 되자 나는 이제 갈 데가 없어졌다. 공납금이 자꾸 밀리고 취로사업 다닌다고 무단결석을 밥 먹듯 하니 선생님 시선인들 고울 일이 없었다. 그러니 학교 가기가 싫었다. 그래도 의지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은 교회였는데 내 발로 차고 주먹까지 휘두르고 나왔으니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역 앞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이 다방이었다. 빈둥거리기도 지겨워 다방을 찾아갔다. 다방에는 조리실이 붙어 있고 차를 만드는 ‘쿡’이 있었다. 중학교만 나오고 그 일을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을 만났더니 함께 일하자고 했다. 부랑자가 된 시초였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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