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유병규] 기업과 은행의 상생도 중요 기사의 사진

요즈음 한국 경제의 최대 화두는 상생(相生)이다. 상생의 의미를 사전에서는 “오행설(五行說)에서 쇠(金)는 물(水)을, 물은 나무(木)를, 나무는 불(火)을, 불은 흙(土)을, 흙은 다시 쇠(金)를 나게 함, 또는 그 관계를 이르는 말”로 풀이해 놓았다. 한마디로 서로 살리는 관계를 뜻한다. 노자 도덕경에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란 구절도 나온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어울리는 대화합 정신을 강조한 노자사상의 하나로 풀이된다. 이를 합하면 상생은 서로 살려주는 대화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각 부문간 상생 구조를 구축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사 간 서로 살려주는 관계를 맺어야 한국 경제의 앞날이 환히 밝아진다. 이에 못지않게 상생 구조가 정착되어야 할 부문이 기업과 은행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인 은행과 기업이 상생 관계를 맺지 못하면 부의 확대재생산 자체가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국내 기업과 은행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매우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어 왔다. 은행은 기업을 낳고 기업은 은행을 성장시켰다. 양자가 서먹해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위기 극복 과제에서 정부를 대신해 은행이 자금 공급뿐만 아니라 구조조정 역할까지 떠맡게 된 것이다. 주채권은행을 통한 재무구조평가제도가 이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부실 부문을 정리하는 위기 때와는 달리 경제를 키워가야 하는 시기다. 기업 투자를 최대한 늘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서민 경기를 부양하려면 기업과 은행의 상생 구조를 새로운 현실에 맞게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구조조정이 기업과 은행의 자율적 판단과 책임 하에 이루어지도록 제도의 기본틀을 근본적으로 혁신할 필요가 있다. 은행 뒤에 있는 감독 기관의 지도와 감시 속에서는 주어진 규정에 얽매여 상생 관계가 힘들어진다. 주채권은행의 전신인 주거래은행 제도는 외환위기 전에는 정부의 주요 규제 철폐 대상 중 하나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에 자율성 보장이 어렵다면 은행에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는 재무구조평가 제도는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시급하다.

첫째,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게 규정된 부채비율 규제를 완화하고 산업별 특성을 반영하여 신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해운과 같은 국내 주력 산업들이나 환경, 에너지와 같은 신산업들은 모두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한다. 장치산업 등의 부채비율을 상향 조정하고 대규모 투자 시에도 이를 높여주어야 투자 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둘째, 과거 경영 실적보다는 미래 사업 가치와 성장 능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평가 체계를 고쳐야 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세계경제 불황과 같은 피치 못할 사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경영 사정이 악화되었다고, 경기회복기에 크게 성장할 기업을 부실기업으로 낙인찍는 잘못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셋째, 우월적 지위를 통한 권한 남용을 막아야 한다. 대기업 부당 행위의 핵심은 강자인 대기업이 약자인 중소기업을 강압적으로 조사하고 납품단가 등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 있다. 채권자요 재무구조 평가자로서 우월적 상태에 있는 은행이 채무자인 기업 의견과 산업 특수성을 전적으로 무시한 채 일방적인 구조조정 결정을 하고 이에 따르지 않는다고 모든 채권은행을 동원해 자금줄을 막는 것은 상생이 아니라 상극 관계라 할 수 있다. 주채권은행이 금융 당국을 빙자하여 다른 금융기관들의 자율적 의사를 제한하는 것은 시장경제 자체를 무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어느 경제 부문이든 힘의 남용과 일방적 지배를 막기 위해서는 대화와 타협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서로간의 존중과 배려에서만 상생은 실현된다. 상생 구조가 정착되려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을 신원(伸寃)해주는 공평무사한 포청천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기업간뿐만 아니라 은행과 기업 사이에 상생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국 경제가 살 수 있다.

유병규(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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