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8) 인생 밑바닥서 구원해준 밧줄은 ‘문학’

[역경의 열매] 유현종 (8) 인생 밑바닥서 구원해준 밧줄은 ‘문학’ 기사의 사진

권투는 체급경기이다. 가장 가벼운 경량급은 45㎏ 이상의 플라이급이고 그 다음이 밴텀급이고 더 올라가면 웰터급이고 미들급, 헤비급 순이다. 물론 프로와 아마추어의 한계 체중에는 차이가 있다.



플라이급보다 더 가벼운 급이 있다. 핀급이라 하며 체중 45㎏ 미만 선수를 말한다. 핀급은 대개 중학생들이다. 핀급은 정식시합은 뛰지 못하고 번외경기를 뛸 수 있다. 정식 시합 전 맛보기로 이른바 오픈게임에 나가는 것이다.

나도 오픈게임에 뛰곤 했는데 사범을 비롯해 선배들이 모두 미기상(美技賞)감이라고 칭찬을 해주곤 했다. 폼이 깨끗하다는 것이었다. 그 칭찬을 다 믿으면 안 될 듯싶었다. 전주 이리 군산을 통틀어 핀급선수는 몇 명 안 되는데 빠져버리면 흥행에 문제가 발생할까봐 ‘잡아두기 칭찬’을 했는지도 모른다.

고교에 진학하면서 권투를 그만두었다. 당시 프로권투가 있었다면 달라붙었을지 모르지만 아마추어 가지고는 장래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권투선수가 아니었다고 여기고 있는데 친구는 다방주인에게 권투선수로 과장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나는 다방주변 정리원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말이 정리지 사고 방지원(防止員)이었다. 학교에 다니며 오후시간에 일을 하는데 사고 날 일이 별로 없어 빈둥거리는 게 일이었다. 용돈도 제법 생겼다. 다방 일뿐 아니라 때로는 비밀 댄스홀 경비 일에 망꾼으로 불려가기도 했다.

자유당 시절이라 사교댄스가 들어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었다. 춤바람 난 대학교수 부인의 불륜을 그려 화제작이 된 정비석의 ‘자유부인’이 나온 것도 그 시절이었다. 가정집에 비밀 교습소를 차려놓고 교습을 시켰다. 경찰단속 대상이라 예고 없이 기습단속을 했다. 내가 맡은 망꾼은 골목 밖에 서성이며 경찰이 뜨는지 안 뜨는지 알아 교습소 주변을 지키는 형들에게 신호로 알려주는 일이었다.

교회도 다니고 한눈을 팔지 않은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쩌다 그런 좋지 않은 세계에 빠질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시내에 활보하고 다니는 주먹 패는 권투할 때 알게 된 친구와 선배들이 대부분이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비뚤게 나가면서부터는 학교 공납금 밀릴 일도 없게 되었다. 용돈도 넉넉하여 집에도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일말의 양심에 가책도 느끼지 못했으니 사탄의 손아귀에 꽉 잡혔던 것 같다.

회개하고 객지에 나간 탕자가 돌아오듯 훗날 하나님 앞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두 개의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주시고 구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하나는 잃어버렸던 예수님을 다시 찾게 해주신 것이고 또 하나의 밧줄은 문학이었다.

문학으로 더 이상 밑바닥 인생으로 굴러 떨어질 것을 잡아주셨던 것이다. 나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부랑자 생활을 하고 때로는 패싸움을 하고 다니면서도 내 옆구리에는 언제나 소설집이나 시집 등 문학 서적이 끼어져 있었다.

그 당시 내 어렸을 적 별명은 ‘유빡’이었다. 지금도 어렸을 적 친구들은 날 만나면 “야, 유빡!” 하고 부른다. 유빡은 유 박사의 준말이다. 틈만 나면 밤거리 가로등 밑에 앉아서도 독서삼매에 빠지곤 했던 것이다.

그걸 본 선배들은 저놈은 틀림없이 나중에 박사가 될 놈이라고 해서 붙인 별명이 유빡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나오긴 했는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대학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고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들 학비를 대려면 취직 시험을 봐야 했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실업학교인 공고만 나와도 취직은 쉬웠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고민은 취직을 하느냐 아니면 문학을 계속하느냐는 선택의 문제였다. 취직하면 문학은 버려야만 할 것 같았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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