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나그네 인생 기사의 사진

히브리서 11장 9~10절



그리스도인은 종종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고 그저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 땅에서 나그네 인생을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언제나 소위 영적인 문제에만 사로잡혀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아브라함의 가슴을 환희와 즐거움으로 채워준 위대한 약속은 단지 천군천사들과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는 것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에서 주신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왜 이 땅에서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성경은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창 12:6)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생을 마감하면서 드린 아름다운 기도를 생각해 봅시다. “주 앞에서는 우리가 우리 열조와 다름이 없이 나그네와 우거한 자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머무름이 없나이다”(대상 29:15) 가나안 족속들이 아직도 그 땅에 있었기 때문에 다윗도 나그네로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이런 이유 때문에 “이 땅은 나의 본향이 아니다”라고 노래해야 하는 것입니까? 세계는 지금 국제결혼과 문화적 교류, 그리고 세계화를 통해 하나의 지구촌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또는 문화적으로 셈, 함, 야벳 족속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가나안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문제는 인종적으로나 지리적인 구분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나안 사람들에게 저주가 임하도록 기도할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땅 끝까지 모든 민족과 방언과 모든 족속을 향해 하나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세상 모든 족속과 민족과 방언을 향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그네 인생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종적으로 가나안 민족들을 향해 저주하거나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삶이 아니라 구원과 용서와 사랑을 주기 위한 그리스도의 초대를 선포하며 다가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에게 임했고 앞으로 온전히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의 방식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적대시하며 살았던 흑암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이 땅의 거민들과는 거리를 두고 나그네요 우거자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의 죄악 된 삶의 방식에 대해 나그네와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삶의 현장에서는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는 진정한 나그네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없는 삶의 영역에서는 좀 어설프게 살면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높이는 삶의 영역에서는 본향에 온 것처럼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하면서 진정한 나그네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김성수 총장(고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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