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말 걸기-이명희] ‘보기 좋은 감’이 탈나면 기사의 사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했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친중소기업’ 반전 모드에 당황해하고 섭섭해하던 대기업들이 앞다퉈 중소기업과의 상생대책, 미소금융 지원 확대 방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달 말까지 ‘친서민·친중소기업’ 정책 숙제를 내놓아야 하는 정부 각 부처들은 묘수를 찾느라 고민 중이다. 친서민정책에 반하는 담뱃세·주세 인상안 등은 줄줄이 수면 아래로 묻힐 예정이고, 대신 경기회복의 온기가 서민들과 중소기업 등 윗목까지 번져가도록 하는 정책들이 준비 중이다. 대통령이 던진 ‘친서민’이란 화두에 세제·금융·교육·복지 등 모든 정책들이 다시 재단되고 있다.

정부는 금융사들과 대기업들을 ‘당근과 채찍’으로 압박하고 있다. 캐피털사와 저축은행 금리 인하행진에 이어 삼성 등 대기업들은 미소금융 지원금액을 늘리거나 수혜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서민전용 대출상품인 햇살론 외에도 금융권은 이번 시혜에서 소외된 또 다른 ‘서민’을 구제하는 금융상품을 준비 중이다. ‘툭툭’ 터져 나오는 불만들과 정책 허점을 땜질할수록 금융권과 기업, 정부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히 친서민상품, 친서민정책의 홍수다.

정권 출범 초기 ‘강부자(강남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권) 내각’으로 눈총 받았던 현 정부가 서민들로 눈을 돌린 것은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터널을 지나오면서 그 어느 때보다 서민들은 더 팍팍해진 삶의 무게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장의 민심을 겨냥한 정책들이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근본적 제도 개선이 아닌 ‘대증요법’은 경제에 후유증을 가져오게 된다. 역대 선거 때만 되면 ‘표심잡기 정책’들에 경제가 휘둘리곤 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후세대가 짊어져야 할 몫이 된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됐고, 저출산으로 생산인구는 갈수록 줄어들면서 복지예산은 늘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2016년 이후엔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지금 복지수준을 유지하기만 해도 2050년엔 복지예산이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지금은 재정건전성이 양호하다고 하지만 갈수록 나라 씀씀이는 커지고 있어 백년대계를 짜지 않으면 나라 곳간이 언제 축날지 모른다. 남유럽 재정위기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일관성 없는 냄비 정책은 국가 신뢰도에 금이 가게 만들고, 금융시장을 혼란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수혜자 입장에선 당장 저금리 대출이 ‘보기 좋은 감’이지만 마구 퍼주었다가 금융사 곳간이 부실화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더글러스 노스는 남미 국가들이 미국보다 가난하게 사는 이유를 제도의 차이에서 찾았다. 미국은 분권화된 결정구조를 마련하고 민간 중심의 경제활동이 중심이 돼 자율적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반면 남미에서는 관료가 자의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기업은 관료의 관심과 지원을 얻기 위한 활동에 자원을 투입, 투자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제도가 중장기 경제성장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역설한 대목이다.

지난 11일 퇴임한 정운찬 전 총리도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말을 인용,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정부나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정부는 나라와 국민에게 똑같이 해악을 끼친다”며 “‘선의(善意)의 관치(官治)는 무방하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이나 현 정부는 억울하겠지만 ‘친서민정책’이 진정성으로 와 닿기보다 ‘포퓰리즘’으로 오해 받는 이유는 또 있다. 친서민 카드로 영포게이트 정국을 벗어나자마자 다시 친정체제를 구축했다. 8·15 광복절을 맞아 비리 기업인들을 특별한 이유 없이 사면해준 것도 친서민인지, 친기업인지 헷갈리게 한다.

이명희경제부차장 mh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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