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9) 식구·친구 몰래 서울로 야반도주

[역경의 열매] 유현종 (9) 식구·친구 몰래 서울로 야반도주 기사의 사진

전기과를 나왔으니 취직하긴 어렵지 않았다. 생활이 어렵던 식구들은 그걸 바랐다. 취직을 하면 평생 전선줄이나 만지고 라디오 수선이나 하며 결혼하고 그런대로 행복하게 욕심 없이 잘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한국에서도 이름난 작가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자면 문학에 올인해야 했다. 내가 그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친구 하나가 대학입시요강 한 통을 사서 편지로 보내왔다.

대학입시요강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서라벌예술대학이란 학교인데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면제해주는 장학생을 뽑는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를 잘 쓰든가 소설을 잘 쓰면 장학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흥분을 달랬다. 시가 됐든 소설이 됐든 작품을 쓰는 것이라면 자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더라도 스승한테는 상의를 하여 결정할 문제라 생각했다. 중학생 때 도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한국 서정시의 개척자이신 ‘촛불’의 시인 신석정(辛夕汀) 선생님의 사랑과 지도를 받았다.

신 선생님은 전주 노송동에 살고 계셨는데 집안 텃밭에 장미원을 만들어 부업을 삼고 있었다. 나는 해마다 여름방학 때면 스승 댁으로 가서 열흘, 보름 정도 지내다 왔다.

문학지도를 받으러 간 것이지만 알고 보면 장미밭에 일하러 간 셈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물 주어 키우고 둘레 파고 거름 주며 전지하고. 일이 많았다. 물론 그 일 모두 선생님이 하시고 나는 옆에서 거드는 정도이지만 힘든 일이었다. 일만 시키다가 어쩌다 한마디 하신다.

“새벽 물기 머금은 장미들이 소곤대는 말을 들어봐라. 안 들린다고? 들릴 때까지 매일 귀 기울여봐. 언젠가는 들을 수 있을 테니.” 그게 소중한 시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내가 빗나가 부랑자 생활 하는 걸 선생님은 모르고 계셨다. 내가 티를 내지 않아서였다.

스승을 뵙고 상의를 드렸다. 그러자 입시요강을 일별하시더니 가서 공부해 보라 하셨다. 네 실력이면 장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그러시면서 그 학교에 교수로 있는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선생 앞으로 추천서까지 써주셨다.

학교 입학하고서도 그 추천서를 미당 선생께 섣불리 드리지 못했다. 나는 이미 소설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데 뵙게 되면 시를 쓰라 하실 듯해서였다. 미당은 신석정 선생의 고향후배이고 아주 친한 사이였다.

어찌 됐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진학한다면 식구들을 버려야 한다. 그게 가장 큰 마음의 바윗돌이었다. 하지만 난 결심했다.

“가자! 서울로!”

결심을 더욱 서두르게 한 것은 이렇게 세월을 보내면 나는 건달, 깡패밖에 못된다는 강박감 때문이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고교 졸업하면 성인 건달 취급을 받게 된다. 그리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속에 붙잡히게 된다.

“난 깡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바닥을 떠나지 않으면 결심을 해도 소용없다. 검은 손이 항상 부근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어디에 있든 필요하면 찾아낼 것이다. 때 묻은 이 손을 완전히 씻어내려면 홈그라운드를 떠나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르는 곳으로 사라져버려야 한다. 가자. 저 넓은 서울에 가버리면 누가 날 찾겠는가.”

집안 식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동생만 불러내어 그동안 모아둔 돈을 주고 생활비에 보태 쓰고 누구든 찾아와도 내가 어디 갔는지 모른다고 하라 한 뒤 비상금만 들고 한밤중에 서울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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