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발견] 흥부가 뺨을 맞은 이유 기사의 사진

담장에 박이 열렸다. 기왓장에 올려진 모습이 좀 옹색해 보인다. 박이라는 놈은 애시당초 초가에 어울린다. 짚으로 푹신한 지붕에 둥근 몸을 부려 달빛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박은 보름달의 곡선과 원만함을 닮는다.

잘 익은 박을 타거나 속을 빼낸 뒤 만든 바가지가 일상의 도구라면, 허리가 잘록한 표주박 모양은 미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도자사의 백미인 국보 133호 청자가 표주박 모양 주전자다. 표주박을 본따 만든 종이에 옻칠을 한 공예품은 반가의 액세서리였다.

박이 친근한 것은 교과서 덕이기도 하다. 신라 박혁거세가 박(瓠)에서 탄생하였다거나, ‘흥부전’에서 통쾌한 반전의 모티프로 사용되는 장면이 익숙하다. 요즘은 흥부전에 흐르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보다 흥부가 뺨을 맞는 우스갯소리가 자꾸 생각나 민망하다. 배고픈 흥부가 부엌으로 다가가자 밥 짓던 놀부 마누라가 누구냐고 물었다. “형수님, 저 흥분돼요!(데요).” 주걱이 올라갈 만하다.

손수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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