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0) 드디어 장학생으로 서라벌예대 입학

[역경의 열매] 유현종 (10) 드디어 장학생으로 서라벌예대 입학 기사의 사진

드디어 장학생이 되어 서라벌예술대에 입학했다. 전쟁이 끝나고 너도나도 가난하던 때라 내로라하는 전국의 소년문사들이 다 모여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이미 신춘문예에 당선된 기성 시인은 “일출봉에 해뜨거든 날 불러주오”란 ‘기다리는 마음’의 김민부를 비롯해 3명이었다. ‘점례와 소’로 당선된 천승세를 비롯한 소설가도 2명이나 한 반이었다.

이쯤 되자 작가나 시인이 되기 위한 습작공부에 열을 올리며 서로 먼저 등단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교수진 또한 당시 쟁쟁한 문단의 중진들이었다. 시인 서정주 박목월, 소설가 김동리 안수길, 평론가 백철 조연현 선생 등. 그분들은 모두 작품으로 시험을 대신했기 때문에 B+ 정도만 맞으면 문단에 나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학비가 없는 학교생활은 즐거웠지만 학교 외의 서울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올라올 때부터 누구도 모르게 왔기 때문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가까운 친구도 몰랐고 선후배들도 모두 몰랐다.

검은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철저히 숨겼던 것이다. 숨기지 않았다면 선배나 친구들의 도움도 받고 그처럼 지독한 고생은 면할 수 있었지만 내 결심은 굳었다. 서울에는 유일하게 이모 한 분이 살고 있었지만 그 댁 도움은 아예 받을 수 없을 만큼 집안이 어려웠다.

새벽에 우유배달, 그것이 끝나면 신문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사글세로 들어간 자취방세도 밀리는 형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학교는 미아리 산중턱에 있었는데 교문 앞은 개천이었다. 개천을 건너 교문에 들어가려는데 양복 입은 건장한 청년 두 명이 서성거리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자 쫓아왔다.



“야, 너어.”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고향 선배였던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숨어 있는데 날 어떻게 찾아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임마, 너 찾는다고 새벽부터 헤맸다. 가자!”

“어디루요?”

“중형님이 기다리신다.”

“안돼요. 수업이 3시간이나 있어요.”

“끝날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테니까, 수업 끝내고 나와.”

3시간 수업을 끝내고 3층 강의실에서 내려다보니 교문 앞에 그냥 서 있었다. 도망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아 그들을 따라 택시를 타고 중형님이 있다는 퇴계로 대원호텔로 갔다. 그 호텔은 호남지역 건달들이 단골로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그들이 날 어떻게 찾아냈는지는 가는 택시 안에서 말해줘 알게 되었다. 내가 증발하자 어디로 갔는지 고등학교 교무실로 찾아가 내 담임선생님을 만났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예대 입시원서를 써갔다는 것도 알아내고 서울로 와 며칠째 학교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를 본 중형은 반가워하며 내일부터 영등포극장 뒤에 있는 사브리나 나이트로 출근하라고 했다.

“학교 다니는데, 어떻게 출근해요? 좀 봐주세요.”

“학교는 낮에 다니는 거구. 나이트는 밤에 나가 일을 봐주는 건데, 왜 못해? 상중이가 상무를 하고 있는데 그놈은 음식에 고춧가루밖에 못 뿌리는 놈이잖아? 너 같은 먹물이 옆에서 도와주면 장사 잘 할 거야. 너 보구 깡패 되라는 거 아니니까 가 있어. 너 별명이 ‘빡사’ 아냐? 박사 될 때까지 내가 책임지고 밀어줄 테니까. 내 말대로 해.”

먹물은 배운 건달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아직 대학생인 날더러 이른바 그들이 말하는 먹물노릇을 하기 위해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장차 키워보겠다는 뜻이었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