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만우] 鄭 총리와 세종시 교훈 기사의 사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프랑스 파리에서 세계 공인회계사대회가 개최됐는데 필자가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대회 폐막식에는 대통령의 축사가 예정돼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총무가 개회를 선언하고 회장이 인사말을 시작할 때까지 대통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단상에는 대통령을 위한 의자도 없었다.

궁금증이 더해가는 순간 총무가 회장 연설을 중단시키며 대통령이 곧 입장한다는 안내 멘트를 했다. 바로 그때 시라크 대통령이 단상으로 입장했고 진행자와 악수를 나눈 후 연설을 시작했다. 감사인의 역할과 공정가치 회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축사를 마치자 박수를 받으며 곧바로 퇴장했다. 대통령 참석 행사에는 미리 도착해 장시간 대기해야 하고, 대통령도 행사 끝까지 꼼짝 없이 자리를 지키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달랐다. 박수용 청중동원도, 장식용 단상 귀빈도 없이 대통령의 ‘소중한 10분’이 최상의 효율로 활용되는 현장이었다.

우리나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정부부처 장관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는 곳이 청와대와 국회다. 국회에 불려 나갈 때는 ‘731부대’ 유형의 기습 질의에 대비해 순발력 있는 책임자를 대거 대동한다. 대통령의 위촉장 수여식 때의 배석처럼 대사 한마디 없는 출연도 많다. 이렇게 불려 다니다 보니 신중한 정책 결정의 여유도 없고 결재 지연으로 인한 업무마비도 반복되고 있다.

국립대학 총장을 맡으면서 행정비효율에 치를 떨었을 경제학자 정운찬 교수로서는 행정부를 분리 이전하는 세종시법 원안에 대한 수정은 확고한 소신이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로서도 충청지역 민심과 학자그룹의 반대 여론을 잠재울 총리 카드로 수정안 추진동력을 보충할 실리가 있었다. 일부 언론은 대통령의 직접적 언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시 수정이 성사되면 정 총리가 성과급으로 차기 대권후보를 거머쥘 가능성이 크다며 여야 예비주자들을 자극했다.

세종시 수정은 ‘행정비효율 제거’의 차원을 넘어 지역갈등과 차기 대권까지 목적함수와 제약조건으로 서로 얽힌 난제가 됐다. 국회가 수정안을 깔고 뭉개자 정부가 표결을 보챘고, 소관 상임위원회가 표결을 통해 부결시키자 일부 수정안 추진 의원들이 역사의 기록을 남기겠다면서 본회의 표결을 요구했는데, 결국은 찬성 105, 반대 164, 기권 6으로 부결됐다. 표결 결과가 주홍글씨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으나 반대표를 던진 정진석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임명되면서 ‘해코지’ 논란은 시들해졌다.

수정안 측 주장은 행정부를 쪼개 놓으면 출장이 잦아져 행정비효율이 심화된다는 것이며 반대 측은 지역분권화가 더 중요하며 비효율 문제는 제도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세종시 입주가 완료되면 서울에 남을 청와대와 국회에 대한 방문부담은 대폭 증가해 현재 수준으로 장관과 공무원을 불러대면 업무혼선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청와대가 먼저 화상 국무회의를 정착시키고 국회도 화상질의를 도입해야 한다. 국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에서 해외 임원을 일일이 불러서 보고받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 현대자동차는 해외공장 현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글로벌 상황실을 올해 안 양재동 본사에 구축할 계획이다. 시스템이 구축되면 국내외 공장의 생산현황과 재고관리를 본사 상황실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고 쌍방 통신에 의한 소통도 강화할 수 있게 된다. 청와대와 국회도 정부 부처와 화상시스템을 연결시켜 불필요한 출장 수요를 줄여야 한다.

세종시 수정 논란에서 제기된 행정비효율 해소를 위해 국회 스스로가 공무원 호출을 자제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행정효율 제고를 위해서는 장·차관이 업무에 사용한 시간을 판공비처럼 적절히 분류해 공개해야 한다. 수정안에 반대한 의원은 물론 찬성한 의원들도 행정비효율 제거의 책임이 각인된 주홍글씨를 가슴에 품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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