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현종 (11) 생활고에 제대로 못먹어 영양실조

[역경의 열매] 유현종 (11) 생활고에 제대로 못먹어 영양실조 기사의 사진

통칭 패밀리라 하는 건달조직은 작으면 수십 명에서부터 많으면 수백 명이 된다. 지방에서 깡패 두목으로 이름을 얻으면 서울에 있는 고향 선배들이 스카우트한다. 카바레 영업부장을 시키거나 상무를 시킨다.

의리를 앞세우는 그들로서는 고향 후배밖에 믿을 부하가 없으니 영업부장이 되면 고향에서 후배들을 끌어올린다. 상무나 부장이면 50여명의 아가씨와 50여명의 웨이터, 그리고 악단, 가수 기타 기술직까지 16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다.

장사가 잘되면 변두리 신시가지에 계열사인 나이트나 카바레를 차리게 하고 소두목급을 사장으로 내보낸다. 그러면 그 역시 또 고향 후배들을 끌어올려 조직화한다. 계열사가 많을수록 패밀리는 커지고 기업화되며 비밀자금이 많아진다.

하고 싶은 공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게 해줄 테니 자기들 패밀리에 들어오란 것이었다. 중형은 장차 자기 조직의 살림을 맡을 먹물 적임자로 날 키워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나는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도망치듯 호텔을 나왔다.

어떤 결심을 하고 올라왔는데 그들과 타협할 것인가. 굶어죽어도 찾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는 날 만나기 위해 선배들이 이른 아침부터 교문 앞으로 출근한다는 것이었다. 두 달 넘게 그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학교 건물 뒤는 채석장이 있는 산이었다. 그 산은 안암동 고대 뒷산까지 이어져 있었다. 산을 타고 채석장 뒤 개구멍을 통하여 강의실을 들락거려야 했다. 마침내 날 찾지 못한 그들은 포기를 했는지 몇 달 후부터는 찾아오지 않았다. 비로소 검은손에서 놓여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나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문학이 있었기에 과감히 자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생활고였다. 닥치는 대로 돈 될 만한 일은 다 찾아서 하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영양실조가 원인이었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며 누워 있었다.

건강이 양호한 상태에서 단식을 한다면 길게 버틸 수 있겠지만 빈사 상태에서 굶으니 난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6월 중순께라 여름이 시작되어 더웠지만 나는 너무 춥고 기운이 없어 겨우 기어서 방문을 열고 기대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졸음이 와서 눈을 감고 있는데 대문이 열리고 채소장수 아주머니가 광주리를 이고 들어왔다. 안집 주인도 일이 있다며 집을 비워 문간방에 사는 나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툇마루에 광주리를 내려놓고 열무를 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말할 기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자취하는 학생이냐, 우리 아들은 대학 다니다 몇 달 전에 군대갔다, 고향은 어디냐, 어쩌고저쩌고 혼자 한동안 물었는데 대답이 없자 치맛자락으로 땀을 닦았다. 물 좀 떠다 달라는 시늉을 하자 아주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물을 떠오며 비로소 내가 굶고 있다는 걸 눈치 채는 것 같았다.

그냥 갈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주인집 부엌으로 가서 뭔가를 뒤지고 열무를 씻고 일을 했다. 얼마나 되었을까. 완전히 까부라져 눈을 못 뜨는 날 흔들어 깨웠다. 아주머니였다. 놀랍게도 냄비에는 흰죽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언제 담갔는지 조그만 단지에 열무김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초여름이 되면 어머니가 담가주던 시원한 열무김치가 거기 있었다. 어서 먹고 기운차리라 했다. 눈물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또 오마며 아주머니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두 번 다시 그 아주머니를 만나지 못했다. 두 번째 천사는 그렇게 김칫거리 파는 아주머니로 내 앞에 왔던 것이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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