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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종 칼럼] 김태호, 大魚냐 잔챙이냐

[백화종 칼럼] 김태호, 大魚냐 잔챙이냐 기사의 사진

30년도 더 전, 기자가 국회에 출입하던 유신시절이다. 국회의 대정부질문 시간인데 지금은 고인이 된 박병배 의원이 한복차림으로 단상에 섰다. 질문 상대는 최규하 당시 총리였다. 자신과 최 총리는 고교 동문으로 각별한 관계라고 소개한 박 의원은 “그러나 오늘은 입법부를 대표한 질문자로서 행정부를 대표하는 귀하에게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일국의 국무총리가 공관에서 연탄을 갈 만큼 한가한 자리이고, 또 나라는 태평성대인가”고 몰아붙였다.

“총리가 연탄이나 갈아서야”

그 얼마 전 도하 언론들은 최 총리가 어느 날 저녁 공관에서 고무신 바람에 연탄을 갈았다(당시엔 총리공관도 연탄을 땠던 모양이다)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었다. 그의 서민적 풍모에 찬사가 따라붙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기자도 나중에 대통령까지 지낸 그분을 직접 취재해 봐서 조금 알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직접 연탄을 가는 쇼를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를 잘 아는 박 의원이 그를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총리가 하릴없이 자리나 지켜야 되는 유신체제에 대한 통박이었는지도 모른다.

김태호 총리 후보가 지명된 뒤 발한 일성은 “나는 소장수의 아들”이었다. 국회 청문회를 준비하면서는 광화문 인근의 해장국집, 설렁탕집, 부대찌개집을 찾아 일반 시민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한다는 소식이다. 낮은 자세로 서민적 행보를 계속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그를 아는 이들은 그가 원래 친화력이 뛰어나다고 전한다.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덕일지도 모른다.

구시대 왕조적 개념이지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랄 수 있는 총리의 후보가 낮은 자세로 국민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정권이 갈급(渴急)해하는 국민과의 소통에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소통이 원활해진다면 바닥에 흐르는 민심이 정부 정책에 반영되고, 역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 높아질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방 도지사 출신인 40대의 그가 총리 후보로 전격 기용됨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차기 대통령 후보로 키우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기자는 이 대통령이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또 그가 그런 야망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다만 그가 그런 야망을 갖는 건 젊은 나이에 그런 위치에 오른 사람으로서 자연스런 일이다. 동시에 바람직도 하다는 생각이다. 그가 그런 야망을 가짐으로써 총리가 될 경우 국민의 평가를 의식하고 그 직을 대충이 아니라 제대로 수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그가 대권 경쟁 대열에 합류함으로써 기존의 주자들을 자극하고 선의의 경쟁에 불을 붙여 이 나라 정치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일단은 정치판 자극제 될 것

이처럼 그가 친서민적 모습을 하고 중앙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것은 일단은 많은 사람들이 식상해하고 있는 정치에 자극제이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 후보까지 가는 데는 물론이고 실패한 총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넘어야 할 고비는 너무 많다. 당장 국회 동의 절차가 기다린다.

야당은 그의 도덕성과 경륜을 문제 삼고 있으며, 과민한 탓이겠지만 친박계 의원들의 태도도 변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민주당의 박지원 원내대표는 그를 겨냥하여 “인턴 총리 지명”이라고 평했는데, 만일 그가 총리로 임명돼 제 역할을 못할 경우 그는 정말 “인턴 총리” “해장국 총리”라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현직 대통령이 후계자를 양성하는 시대가 아니다. 대통령이 그를 총리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대통령 후보 반열에까진 올려놓았을지 모르나, 지금부터 그는 경쟁자와 국민으로부터 지방 정치권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혹독한 견제와 시험을 받아야만 한다. 국가 경영에 대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채 해장국집을 찾는 서민적 행보만으론 고지에 결코 오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성공 여부가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도 직결돼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백화종 부사장 wjba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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